개봉 다음 날 ‘엠카’→5주차 무대인사…관람을 ‘활동’으로
팬덤의 진짜 상품은 굿즈가 아니라 ‘다음 일정’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파편화된 뉴스 속 대중문화의 진짜 흐름을 짚어냅니다. 본 코너는 데이터가 곧 팩트가 되는 시대에 발맞춰 기획된 신개념 연예 리포트입니다. 인간 기자의 직관적 시선에 수치와 패턴을 읽어내는 AI 인턴 리포터 ‘잼’의 분석력을 결합했습니다. 가장 유의미한 엔터계 이슈를 ‘연예가중계’처럼 발 빠르게, ‘AI가 중계’합니다. [편집자주]

   
▲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포스터. /사진=CJ ENM 제공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한국에서 영화 한 편을 개봉한 것보다 아이돌이 ‘컴백’한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영화는 99분이지만 팬들에게 제시된 일정은 개봉 후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30일 국내 개봉한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개봉 25일째인 지난 24일 누적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수입사 대원미디어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서 200만명을 넘긴 열 번째 영화이자 애니메이션 가운데서는 ‘토이 스토리5’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전날인 지난달 29일 오후 12시 44분 기준 예매 관객 21만388명, 예매율 41.4%를 기록했습니다. 대원미디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앞서 진행된 프리미어 상영회 평균 좌석 판매율도 92.1%에 달했습니다. 이미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 전부터 강한 팬덤 수요가 확인된 셈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 다음입니다. 배급사 CJ ENM에 따르면 치이카와, 가르마, 토끼, 세이렌은 개봉 이튿날인 지난 1일 Mnet 음악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올라 극 중 삽입곡 ‘The Island Song(섬의 노래)’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CJ ENM은 지난 24일과 25일 전국 37개 CGV에서 4DX 특별 상영을 진행하고 한정 포스터를 증정했습니다. 

대원미디어는 지난 28일 공식 채널을 통해 개봉 5주차인 오는 31일과 11월 1일 치이카와, 가르마, 토끼, 세이렌이 극장을 찾는 무대인사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6일 한국 흥행 과정을 다루며 배급사 CJ ENM이 ‘K팝 방식’의 마케팅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캐릭터를 음악방송에 세웠다고 ‘K팝식’인 것은 아닙니다. 더 눈여겨볼 부분은 팬이 한 번 소비하고 떠나지 않도록 계속해서 ‘다음 일정’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 개봉일이 끝이 아니었다…영화에 생긴 ‘활동 기간’. /사진=AI 챗GPT 제작

▲ 개봉일이 끝이 아니었다…영화에 생긴 ‘활동 기간’

치이카와의 한국 마케팅은 개봉일보다 개봉 이후가 더 촘촘했습니다. 음악방송 출연과 극장 이벤트, 특별 상영, 무대인사가 순차적으로 이어졌습니다. 200만 관객을 넘긴 뒤에도 5주차 무대인사가 새로 추가됐습니다. 흥행하면 홍보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흥행하는 동안 팬이 다시 움직일 이유를 계속 공급한 것입니다.

이 구조는 K팝의 ‘컴백 스케줄’과 닮았습니다. K팝은 신곡을 공개하는 하루만으로 활동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티저와 콘셉트 콘텐츠, 음악방송, 챌린지, 팝업스토어, 팬 이벤트가 일정표처럼 연결됩니다. 각각의 콘텐츠는 하나의 상품인 동시에 팬을 다음 일정으로 이동시키는 장치가 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7월 발간한 ‘글로벌 콘텐츠시장 동향브리프 VOL.2’에서 콘텐츠의 가치가 이용자 수뿐 아니라 팬의 참여와 반복 소비에서 창출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공연과 팬미팅, 굿즈, 커뮤니티, 체험형 이벤트 등이 팬덤 경제의 핵심 수익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입니다.

치이카와가 빌린 것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바로 이 ‘활동 방식’에 가깝습니다.

   
▲ 팬을 만든 게 아니다…이미 있던 팬을 ‘같은 시간표’로 움직였다. /사진=AI 챗GPT 제작


▲ 팬을 만든 게 아니다…이미 있던 팬을 ‘같은 시간표’로 움직였다

이번 흥행을 마케팅만의 성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치이카와는 극장판 이전부터 국내에서 ‘먼작귀’라는 이름으로 굿즈와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강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개봉 전 예매만 21만장을 넘겼다는 사실 역시 콘텐츠에 대한 선행 수요가 이미 컸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번 마케팅의 역할은 팬을 새로 만들어낸 것보다 흩어져 있던 팬들의 관심을 같은 시점에 집중시키는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제 영화 흥행과 함께 캐릭터 소비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집계를 인용해 10월 첫째 주 치이카와 상품 구매자의 72%가 20대와 30대였다고 전했습니다. 20대가 48.8%, 30대가 23.1%였습니다. 같은 보도에서 리셀 플랫폼 크림(KREAM) 집계에 따르면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치이카와 관련 검색량은 전월 같은 기간보다 1304% 증가했습니다. 대원미디어가 지난 1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공식 상품화 명칭 ‘먼작귀’를 활용해 올리브영 ‘딜라이트 프로젝트’, LG트윈스, 와키윌리 등과 협업해 F&B, 어패럴, 뷰티, 스포츠 분야에서 상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뒤 캐릭터를 좋아하게 만드는 단선적인 구조와는 다릅니다. 이미 좋아하던 캐릭터를 영화관에서 만나고, 다시 굿즈와 협업 상품으로 따라가는 순환형 소비에 가깝습니다.

   
▲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포스터. /사진=CJ ENM 제공


▲ K팝의 진짜 기술은 ‘더 사게 하는 것’보다 ‘다음에 뭘 할지 알려주는 것’

K팝 팬덤 산업의 강점은 반복 구매 자체보다 반복 구매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접점을 끊지 않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팬덤 소비는 일반 소비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PwC컨설팅이 올해 1월 공개한 ‘데이터 기반 K팝 밸류 극대화’ 보고서에 따르면 코어 팬덤은 전체 팬덤의 약 30%지만 전체 팬덤 소비의 64%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2023년 공개한 팬덤 마케팅 관련 실태조사에서는 랜덤 굿즈를 얻기 위해 음반을 구매한 소비자가 동일 음반을 평균 4.1개, 이벤트 응모를 목적으로 구매한 소비자는 평균 6.7개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치이카와 사례에서 더 중요한 것은 구매 횟수보다 시간의 반복입니다. 이번 주에는 음악방송을 보고, 다음에는 무대인사를 찾고, 특별 상영을 확인한 뒤 또 다른 굿즈와 협업을 기다립니다. 좋아하는 대상은 하나인데 팬이 해야 할 행동은 계속 새로 생깁니다.

결국 K팝식 팬덤 운영의 가장 강력한 장치는 상품이 아니라 달력일 수 있습니다. 앨범이 나오면 ‘컴백 기간’이 시작되듯, 치이카와 역시 영화가 개봉하면서 일종의 ‘활동 기간’에 들어갔습니다. 팬은 콘텐츠를 한 번 소비하는 관객에서 다음 공지를 기다리는 참여자로 바뀝니다.

   
▲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 강력한 공식에는 피로도 따라온다

문제는 ‘좋아함’을 계속 일정으로 만들수록 팬에게 요구되는 참여 역시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K팝 산업에서는 이미 팬덤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과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년 멕시코 음악산업 동향’ 보고서는 멤버십과 콘서트, 굿즈, 피지컬·디지털 앨범, VIP 경험 등의 비용 증가가 구매력이 제한적인 젊은 팬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치이카와가 같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K팝에서 검증된 팬덤 운영법이 영화와 캐릭터 같은 다른 콘텐츠로 확산된다면, K팝이 경험한 장점과 피로 역시 함께 따라갈 가능성은 생각해볼 만합니다.

팬에게 계속 ‘다음’을 제공하는 것은 강력합니다. 하지만 즐거웠던 덕질이 어느 순간 놓치면 안 되는 일정표로 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포스터. /사진=CJ ENM 제공


▲ AI 잼 리포터 총평
개봉일이 아니라 ‘개봉 이후’를 설계해야

치이카와가 영화계에 던지는 힌트는 분명합니다. 팬덤이 있는 작품이라면 마케팅의 끝을 개봉일로 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개봉 이후에도 특별 상영과 이벤트, 협업을 이어 붙이면 흥행의 수명을 늘리고 영화 밖 지식재산권(IP) 소비까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영화가 치이카와처럼 팬덤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팬이 움직일 이유가 있는 작품이라면 이제 중요한 것은 개봉 전 얼마나 크게 알리느냐뿐 아니라, 개봉 후 무엇을 계속 기다리게 할 것인가입니다.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