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의 엔터랩-호칭의 사유화②] 언제부터 연예인이 내 선배였나
입력 2026-11-05 07:05:05 | 수정 2026-11-05 07:05:05
김민서 기자 | kim8270@mediapen.com
‘○○ 씨’ 대신 방송을 채운 ‘선배님’…배우·가수·코미디언까지
그들끼리 쓰는 호칭, 왜 방송에서도 당연해졌나
그들끼리 쓰는 호칭, 왜 방송에서도 당연해졌나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연예계의 익숙한 공식과 통념을 AI의 실험대에 올립니다. 흥행 성적과 팬덤, 콘텐츠 소비 방식, 플랫폼 변화 등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비교해 ‘정말 그런가’를 검증하고, 숫자 뒤에 숨은 이유와 흐름을 파고드는 분석 기획입니다. ※ 기자가 기사 방향 설정과 취재·사실 확인·최종 편집을 맡았으며, AI가 공개 자료의 비교·분석을 담당했습니다. [편집자주]
두 번째 키워드는 호칭의 ‘사유화’다. 가수들끼리 선후배를 따지는 건 그들의 관계다. 문제는 그 내부 질서가 음악방송과 예능을 타고 시청자 앞까지 나와 방송의 언어가 된다는 점이다. 먼저 데뷔한 가수가 후배 가수의 선배인 건 맞다. 그렇다고 시청자의 선배까지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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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방송을 켜면 또 ‘선배님’. /사진=AI 챗GPT 제작 | ||
[기자|음악방송을 켜면 또 ‘선배님’]
최근 1년간 MBC ‘쇼! 음악중심’, KBS 2TV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Mnet ‘엠카운트다운’ 등 주요 음악방송을 보면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된다. MC가 출연 가수를 소개할 때, 후배가 선배의 무대를 언급할 때, 인터뷰에서 서로의 경력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물론 후배 가수가 먼저 데뷔한 가수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묻고 싶은 건 그 다음이다. 왜 그들끼리의 데뷔 연차와 서열이 시청자가 보는 방송에서도 계속 강조돼야 할까. 누가 ‘대선배’인지, 누구 앞에서 긴장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언제부터 음악방송을 즐기는 데 필요한 정보가 됐을까.
예전 방송에서 출연자를 소개하고 부르는 가장 무난한 말은 ‘○○ 씨’였다. 지금은 ‘선배님’, ‘형’, ‘누나’처럼 출연자들끼리 쓰는 호칭이 그대로 방송에 등장한다. 이 변화가 실제 방송언어의 흐름에서도 확인되는지 AI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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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의 공적 호칭은 원래 ‘○○ 씨’였다. /사진=AI 챗GPT 제작 | ||
[AI|방송의 공적 호칭은 원래 ‘○○ 씨’였다]
자료를 확인해보니 사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호칭이 방송에 들어오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2003년 정책브리핑에 실린 방송언어 관련 글은 진행자가 동료 연예인을 ‘오빠’, ‘형’, ‘선배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례를 짚으며 방송에서는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방송의 말은 바로 옆 출연자뿐 아니라 시청자와 청취자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과 롯데홈쇼핑이 만든 ‘홈쇼핑 언어 사용 지침서’도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 ‘선배’는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공적인 공간인 방송에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하며 진행자와 출연자 사이에는 ‘○○ 씨’라는 공식적인 호칭을 쓰도록 안내했다. 실제 잘못된 사례로 “한 번만 가도 되겠죠, 선배님?”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거 방송언어의 원칙은 비교적 명확했던 셈이다. 출연자끼리 실제로 어떤 관계든 방송에서는 시청자를 고려한 공적인 호칭으로 한 번 걸러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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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씨’와 ‘선배님’ 사이. /사진=AI 챗GPT 제작 | ||
[기자|‘○○ 씨’와 ‘선배님’ 사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방송을 보는 위치는 달라진다. ‘○○○ 씨가 말했습니다’라고 하면 출연자와 시청자가 같은 인물을 함께 바라본다. 반면 ‘선배님이 말했어요’라고 하면 그 사람은 먼저 화자의 선배로 규정된다.
누가 누구의 선배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편함은 아니다. 다만 이런 호칭이 반복되면 방송의 기준이 시청자보다 출연자들의 관계에 맞춰진다. 시청자를 향해 이야기한다기보다 연예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는 듯한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사유화’라는 표현을 붙였다. 출연자들 사이에서 통하는 관계의 언어가 대중을 향한 방송에서도 별다른 변환 없이 공용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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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방송 밖에서도 ‘선배님’은 반복됐다. /사진=AI 챗GPT 제작 | ||
[AI|음악방송 밖에서도 ‘선배님’은 반복됐다]
실제 용례를 넓히자 ‘선배님’은 가요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배우와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예능에서도 같은 호칭이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SBS ‘런닝맨’에 출연한 코미디언 김지유는 유재석을 “선배님”이라고 불렀고,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박영진 역시 유재석과의 일화를 전하면서 ‘재석 선배님’, ‘선배님’이라고 표현했다. 배우 지예은도 ‘런닝맨’에서 유재석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가요 콘텐츠에서는 더 직접적이다. Mnet ‘엠카운트다운’을 진행한 성한빈은 공동 MC였던 미연을 ‘미연 선배님’이라고 표현했고, KBS Kpop 콘텐츠에서는 아일릿 민주가 ‘슈화 선배님’이라고 말했다. KBS 공식 채널은 태민 관련 영상 제목 자체를 ‘성시경 선배님 앞에서 부르는 내게 오는 길’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즉 ‘선배님’은 사석에서 우연히 튀어나오는 호칭에 그치지 않았다. 음악방송과 예능의 대화는 물론 방송사가 직접 붙이는 콘텐츠 제목까지 들어왔다. 배우·가수·코미디언을 가리지 않고 연예인들 사이의 실제 관계어가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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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부터 그들의 선배가 우리의 선배가 됐나. /사진=AI 챗GPT 제작 | ||
[기자|언제부터 그들의 선배가 우리의 선배가 됐나]
선배를 선배라고 부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기실에서든 사석에서든 당사자들이 어떤 호칭을 쓰는지는 그들의 몫이다.
다만 방송은 그들끼리의 관계를 그대로 옮겨놓는 공간과는 다르다. 과거 방송언어가 굳이 ‘○○ 씨’라는 공적인 호칭을 권했던 것도 방송에는 출연자들뿐 아니라 그 관계에 속하지 않은 시청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계가 흐려지면서 이제 ‘선배님’은 너무 익숙한 방송언어가 됐다. 가수의 선배도, 배우의 선배도, 코미디언의 선배도 결국 그들의 선배인데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그들끼리의 관계를 전제로 한 대화를 보고 듣는다.
‘호칭의 사유화’가 묻는 것은 그 지점이다. 언제부터 방송은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대신, 연예인들끼리 쓰는 ‘선배님’을 우리가 옆에서 듣는 공간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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