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의 엔터랩-호칭의 권위화③] 왜 모두 ‘아티스트’가 됐나
입력 2026-11-05 07:05:10 | 수정 2026-11-05 07:05:10
김민서 기자 | kim8270@mediapen.com
법적 대응·스토킹·공연수칙에도 ‘소속 아티스트’
가수·배우·연예인 두고 왜 굳이 ‘예술가’라 부르나
가수·배우·연예인 두고 왜 굳이 ‘예술가’라 부르나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연예계의 익숙한 공식과 통념을 AI의 실험대에 올립니다. 흥행 성적과 팬덤, 콘텐츠 소비 방식, 플랫폼 변화 등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비교해 ‘정말 그런가’를 검증하고, 숫자 뒤에 숨은 이유와 흐름을 파고드는 분석 기획입니다. ※ 기자가 기사 방향 설정과 취재·사실 확인·최종 편집을 맡았으며, AI가 공개 자료의 비교·분석을 담당했습니다. [편집자주]
세 번째 키워드는 호칭의 ‘권위화’다. 가수는 가수고 배우는 배우다. 이들을 한꺼번에 부를 때는 ‘연예인’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연예기획사의 공식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모두 ‘아티스트’가 된다. 단순히 직업을 묶어 부르는 편리한 말일까. 아니면 ‘예술가’라는 이름을 빌려 연예인의 위상까지 함께 끌어올리는 호칭일까.
![]() |
||
| ▲ 공식입장만 열면 또 ‘아티스트’. /사진=AI 챗GPT 제작 | ||
[기자|공식입장만 열면 또 ‘아티스트’]
연예부 기자가 소속사의 공지를 받아보다 보면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지겹도록 만난다. ‘당사 아티스트’, ‘소속 아티스트’, ‘아티스트 권익 보호’. 음반이나 작품을 소개할 때만 나오는 말도 아니다.
악성 댓글에 법적으로 대응할 때도 아티스트, 스토킹 피해를 알릴 때도 아티스트,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질서를 안내할 때도 아티스트다. 대상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어도 회사는 굳이 ‘가수 ○○’, ‘배우 ○○’, ‘연예인 ○○’보다 ‘아티스트’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여기서 궁금해졌다. 이 말은 실제로 창작 활동과 무관한 공식 문서에서도 그렇게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을까. AI에 주요 기획사의 공식 자료를 확인하게 했다.
![]() |
||
| ▲ 법적 대응에도·공연수칙에도 ‘아티스트’. /사진=AI 챗GPT 제작 | ||
[AI|법적 대응에도·공연수칙에도 ‘아티스트’]
확인 결과 ‘아티스트’는 작품이나 창작 활동을 소개하는 문맥을 훨씬 넘어 사용되고 있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 5월 ‘아티스트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적 대응 안내’에서 악성 콘텐츠와 스토킹 피해를 설명하며 ‘소속 아티스트’, ‘아티스트의 권익’, ‘아티스트의 안전과 사생활’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창작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명예훼손·성희롱·스토킹 등에 대응하는 법률 공지였다.
빅히트뮤직도 방탄소년단의 악성 게시물과 권익 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알리며 ‘소속 아티스트 방탄소년단’, ‘아티스트의 권익 보호’라고 표현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관련 공지에서도 허위사실과 악성 루머에 대응하면서 같은 명칭을 사용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 공연 관람 수칙에서 ‘YG 소속 아티스트의 국내외 활동’, ‘아티스트와 팬’이라고 적었다. 2024년 딥페이크 대응 공지에서도 피해 대상을 ‘소속 아티스트들’이라고 지칭했다. 공연 질서와 불법 합성물 대응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문서에서도 명칭은 같았다.
배우와 방송인도 예외는 아니다. 판타지오는 사업보고서의 ‘소속 배우 및 가수 현황’에서 배우 백윤식·강예원, 코미디언 서경석, 가수 이창섭, 그룹 아스트로 등을 ‘소속 아티스트’라는 하나의 항목으로 묶었다.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는 ‘아티스트’는 무엇을 창작했는지를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을 부르는 명칭에 가까웠다.
![]() |
||
| ▲ ‘연예인’에서 ‘예술가’로, 말의 급이 달라진다. /사진=AI 챗GPT 제작 | ||
[기자|‘연예인’에서 ‘예술가’로, 말의 급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아티스트’일까.
‘연예인’이라고 하면 하는 일이 먼저 떠오른다.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추고,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이다. ‘가수’와 ‘배우’는 그중에서도 구체적인 직업을 설명한다.
‘아티스트’에는 한 겹이 더 붙는다. 단순히 연예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표현하는 ‘예술가’라는 의미다. 같은 사람을 가리켜도 ‘소속 연예인’과 ‘소속 아티스트’가 주는 인상이 같을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문제는 누가 아티스트 자격이 있느냐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가수와 배우가 창작자이고 예술가다. 궁금한 건 왜 개개인의 역할이나 창작 여부와 상관없이 연예기획사가 자기 소속 연예인을 일괄적으로 ‘아티스트’라 높여 부르는 방식이 업계의 공식 문법처럼 굳었느냐다.
![]() |
||
| ▲ 사전에서 ‘아티스트’는 곧 ‘예술가’였다. /사진=AI 챗GPT 제작 | ||
[AI|사전에서 ‘아티스트’는 곧 ‘예술가’였다]
단어의 뜻을 확인하면 두 표현의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연예인’을 “연기나 노래, 춤 등의 연예 활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무엇을 직업으로 하는지를 설명하는 말이다.
반면 ‘예술가’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동의어로 ‘아티스트’를 제시한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공공언어 자료에서도 외래어 ‘아티스트’를 ‘예술가’로 순화하도록 안내했다. 즉 한국어에서 ‘아티스트’가 단순히 ‘연예인’의 영어식 표현인 것은 아니다. 본래 의미에는 창작과 예술이라는 가치가 들어 있다.
기획사 공지의 용례와 사전적 의미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드러난다. 실제 문서에서는 법적 대응, 사생활 보호, 공연 관람 수칙처럼 예술 창작과 직접 관계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아티스트’라고 부르지만, 단어 자체는 여전히 ‘예술가’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 |
||
| ▲ 직업명 대신 권위를 붙이는 호칭. /사진=AI 챗GPT 제작 | ||
[기자|직업명 대신 권위를 붙이는 호칭]
바로 이 지점에서 ‘권위화’라는 질문이 생긴다. ‘가수’, ‘배우’, ‘연예인’이 하는 일을 설명한다면 ‘아티스트’는 거기에 창작자와 예술가라는 이미지를 더한다. 같은 사람을 부르면서도 단순한 직업명보다 한 단계 더 가치가 실린 이름을 붙이는 셈이다.
물론 실제로 예술가인 연예인도 많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굳이 ‘아티스트’라고 불러야 할 이유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악성 댓글 대응에서도, 사생활 보호에서도, 공연수칙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아티스트’는 더 이상 작품 활동을 설명하는 단어에만 머물지 않는다. 회사가 소속 연예인에게 부여하는 공식적인 위상에 가까워진다.
이번 연작에서 살펴본 호칭도 그렇게 하나씩 의미를 덧입었다. ① 배우라는 직업명이 ‘○○ 배우’, ‘배우님’이라는 직함처럼 굳어지는 '서열화', ② 연예인들끼리의 ‘선배님’이 방송의 공용어가 되는 '사유화', ③ 연예인을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끌어올리는 '권위화'다.
세 표현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자연스러워져 그 안에 담긴 관계와 위상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칭은 단순히 사람을 부르는 말 같지만 누가 더 높게 대접받는지, 누구의 관계가 기준이 되는지, 어떤 이미지를 덧씌우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배우는 언제부터 ‘배우님’이 됐고, 그들의 선배는 언제부터 방송에서도 ‘선배님’이 됐으며, 연예인은 언제부터 모두 ‘아티스트’가 됐을까. 세 번의 질문 끝에 남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익숙해서 지나쳤던 호칭 속에 연예계가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