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타령 그만하고 벤처 생태계 만들어라
여야가 지리한 협상 끝에 SO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에 합의했다. 이로써 미래창조과학부는 SO와 IPTV, 위성TV를 총괄하게 되었다. ‘SO 관할권’이 47일간이나 정부조직법을 묶어놓을 만한 일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어렵사리 획득한 SO를 행여 기술적으로 접근하려고 할까 하는 노파심에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한다. SO를 성장동력화 한다고 함은 SO를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육성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은 ‘사람’과 ‘제도’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콘텐츠 사업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무형의 상품을 만드는 업종이다. 세상에 사업치고 쉬운 게 어디 있겠는가마는 방송사업도 어렵기로 말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골치 아픈 업이다. 공산품은 한번 신상품을 만들면 그걸 그대로 복제하여 최소 3년에서 10년 이상을 팔아 매출과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방송 콘텐츠는 매일 신상품을 제작해야 하고 한번 팔고 나면 대부분은 매출과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고 이성으로 설득하는 방송 콘텐츠는 묘하게도 돈벌이 할 생각으로 제작하면 시청률이 시원찮다. 우리나라에 SO와 PP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되고 있으나 미국과 달리 SO들이 지상파의 콘텐츠력에 여전히 못미치는 것은 콘텐츠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는 제작비를 들일 땐 과감하게 내질러야 하고 대중 스타와 작가와 피디들을 잘 ‘대접’해야 하는데, 재벌 기업의 CEO나 기업 오너들은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방송 콘텐츠는 기술벤처기업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술벤처기업들은 창업자가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수익성 있는 상품을 직접 창조하고 생산을 주도하기도 하지만, 방송 콘텐츠는 작가와 탤런트와 피디를 일시적으로나마 고용하여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방송사 사장이 콘텐츠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자본과 시설을 대주고 그들을 다독여주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방송 콘텐츠업은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 전문지식서비스업과 같이 구성원들을 파트너로 인식해야 하는데 우리 SO와 PP들은 싼값의 노동자로 취급한다. 이래 가지고는 좋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 정부는 방송을 방통위원회에서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서 여야간 줄다리기로 아무 것도 못하다가. 이제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두 동강이 나서 더더욱 제도적 개혁은 물건너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성급하게 든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그 실마리는 K-POP의 성공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방송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에서 끊임없이 벤처 기업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만든 작품들이 세계 시장을 노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상파 지배구조’라든가 ‘공정방송’이라든가 하는별로 실익도 없는 다툼일랑 내버려두고 방송 생태계에 젊은 작가와 독립 피디들, 작은 벤처 프러덕션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