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칭찬으로 창조의 불을 당겨야
여야 의원들이 지난 1일 인사청문회에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에게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 “최 장관후보자는 창조경제를 애매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따져 물으며 창조경제의 개념 정립을 요구했다.
‘창조’란 원래 애매한 것인데, 애매한 것을 두고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다그치는 것은 좀 우문인 것 같다. 이는 ‘경제민주화가 뭐냐’, ‘복지가 뭐냐’, ‘잘사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이런 걸 따져 물으면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논쟁에 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정의는 필요해 보인다. 나의 개념 정의가 남과 다를 수 있다는 걸 겁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좀 애매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는 선진국에 도달하기 위한 거의 마지막 문턱인데, 그리 쉬울 수야 없지 않은가. 기자가 정의를 내린다면, ‘창조’는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고, ‘창조경제’는 선진국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경제를 말한다. 독창적인 것만 만들어내면 ‘창조’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시장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때 ‘창조경제’라는 근사한 말을 붙일 수 있을 터이다.
여야 의원들의 개념 정립 요구는 ‘창조경제’의 개념을 정말 몰랐다기보다는 사실은 그걸 어떻게 실천하는가가 궁금해서 물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질문에 대해 최 장관후보자가 속 시원히 대답을 못해준 것 같다.
‘창조’는 ‘개인’ 혹은 ‘그룹’이 주체다. ‘기업’이나 ‘국가’는 창조하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과 그룹이 창조를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창조경제’는 국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그룹이 창조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달성된다. 창조경제는 국가의 격려를 통해 개인과 그룹이 시장적 의미가 있는 창조적 상품과 서비스를 많이 생산하는 경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강조컨대 창조경제의 주체는 민간이다. 창조경제는 기업이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꽉 막힌 사람들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창조경제의 주역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그 말이 옳다. 그러나 한국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창조적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한국 경제의 4대 천왕인 삼성과 범 현대, LG, 포스코를 보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창조적이다. 왜 그런가. 한국처럼 작은 내수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창조적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재벌옹호주의자가 아니지만 대기업의 창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반면에 한국의 중소기업은 소수의 글로벌 강소기업들을 제외하고는 정부 의존형이 많다. ‘창조’의 반대말은 ‘의존 및 의타심’이다. 정부 지원금에 빨대를 꽂고 있어서는 절대로 창조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좀비 기업들에 돈을 무분별하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좀비 기업을 솎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이라고 무턱대고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것과 같은 교각살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 다음, 창조를 잘하는 기업들을 칭찬해줘야 한다.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개적으로 칭찬해야 한다. ‘칭찬’만은 아랫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국민들이 그들을 존중하도록 해줘야 한다. 물질적 보상보다 정신적 만족이 훨씬 효과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인의 ‘기 살리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이 독려하면서 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의 부드러움과 자애함으로 창조적 기업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칭찬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믿음과 신뢰’의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믿음과 신뢰’도 ‘창조경제’처럼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국민 앞에 내가 완전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인간적 솔직함, 정직함, 진정성 등 이런 것들이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보여질 때 자연히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믿음과 신뢰’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창조경제’는 물론 제2의 대한민국의 기적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는다. (끝)
‘창조’란 원래 애매한 것인데, 애매한 것을 두고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다그치는 것은 좀 우문인 것 같다. 이는 ‘경제민주화가 뭐냐’, ‘복지가 뭐냐’, ‘잘사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이런 걸 따져 물으면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논쟁에 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정의는 필요해 보인다. 나의 개념 정의가 남과 다를 수 있다는 걸 겁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좀 애매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는 선진국에 도달하기 위한 거의 마지막 문턱인데, 그리 쉬울 수야 없지 않은가. 기자가 정의를 내린다면, ‘창조’는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고, ‘창조경제’는 선진국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경제를 말한다. 독창적인 것만 만들어내면 ‘창조’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시장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때 ‘창조경제’라는 근사한 말을 붙일 수 있을 터이다.
여야 의원들의 개념 정립 요구는 ‘창조경제’의 개념을 정말 몰랐다기보다는 사실은 그걸 어떻게 실천하는가가 궁금해서 물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질문에 대해 최 장관후보자가 속 시원히 대답을 못해준 것 같다.
‘창조’는 ‘개인’ 혹은 ‘그룹’이 주체다. ‘기업’이나 ‘국가’는 창조하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과 그룹이 창조를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창조경제’는 국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그룹이 창조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달성된다. 창조경제는 국가의 격려를 통해 개인과 그룹이 시장적 의미가 있는 창조적 상품과 서비스를 많이 생산하는 경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강조컨대 창조경제의 주체는 민간이다. 창조경제는 기업이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꽉 막힌 사람들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창조경제의 주역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그 말이 옳다. 그러나 한국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창조적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한국 경제의 4대 천왕인 삼성과 범 현대, LG, 포스코를 보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창조적이다. 왜 그런가. 한국처럼 작은 내수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창조적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재벌옹호주의자가 아니지만 대기업의 창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반면에 한국의 중소기업은 소수의 글로벌 강소기업들을 제외하고는 정부 의존형이 많다. ‘창조’의 반대말은 ‘의존 및 의타심’이다. 정부 지원금에 빨대를 꽂고 있어서는 절대로 창조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좀비 기업들에 돈을 무분별하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좀비 기업을 솎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이라고 무턱대고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것과 같은 교각살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 다음, 창조를 잘하는 기업들을 칭찬해줘야 한다.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개적으로 칭찬해야 한다. ‘칭찬’만은 아랫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국민들이 그들을 존중하도록 해줘야 한다. 물질적 보상보다 정신적 만족이 훨씬 효과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인의 ‘기 살리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이 독려하면서 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의 부드러움과 자애함으로 창조적 기업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칭찬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믿음과 신뢰’의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믿음과 신뢰’도 ‘창조경제’처럼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국민 앞에 내가 완전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인간적 솔직함, 정직함, 진정성 등 이런 것들이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보여질 때 자연히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믿음과 신뢰’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창조경제’는 물론 제2의 대한민국의 기적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는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