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과 충격적 몰락, 그 사이에 선 대한민국
수정 2016-03-22 11:14:42
입력 2016-03-21 09:04:54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가짜 판치는 사회…총선의 계절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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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석 주필 | ||
자본주의 손가락질에 모두가 편승할 경우 시장경제는 제풀에 주저앉는다는 게 슘페터의 경고인데, 자유민주주의(자민주의)의 앞날 역시 그런 역설에 노출돼 있다. 자민주의의 질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이 체제를 몰락으로 몰고 가는 힘도 함께 커진다.
교과서 수준의 민주주의만을 아는 위선적 지식인 그룹은 그런 위험성을 미처 모르거나 말하지 않겠지만, 책임있는 우리라면 좀 달라야 한다. 상황이 그만큼 위중하기 때문이다. 4월 총선 정치의 계절이 한창인 지금 좀상스러운 협잡과 편 가르기 따위만 무성할 뿐 진정한 담론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다. 충격적 몰락의 개연성과 진정한 역사 대박의 그 사이에 서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래도 될까?
시장경제의 몰락, 민주주의의 타락
그 차원에서 지난 보름 나는 자민주의를 보위할 방어체제를 갖추자는 제안을 연속 칼럼으로 써왔다. 오늘이 포괄적인 성찰을 곁들이는 대미(大尾)인데, 분명한 건 민주주의란 생각보다 취약점이 많다. 합당한 방어장치 없이는‘자민주의 체제를 흔드는 안팎의 손’에 의해 어느 날 붕괴할 수도 있다.
그런 방어적 민주주의론 나의 경우 특히 정치학자 양동안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학자의 머리수만큼 많은 게 민주주의 정의인데, 그중 양 교수의 것이 설득력 있다. 무책임한 '민주주의 만능론'을 경계하는 훌륭한 지침이기 때문이다.
사실 적지 않은 이들이 민주주의란 게 보편적이며, 최고 최선의 정치체제라고 여기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기회에 점검해봐야 할 요소가 더 있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통치방법, 즉 그릇이다. 민주주의란 그릇 안에 무얼 담아낼 것인가는 각 나라와 체제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즉 민주주의란 그 자체가 별도의 이념이나 사상체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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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민주의는 자유-평등-관용-다수결 등을 핵심원리로 하고, 국민주권과 대의제도를 제도화하는데, 그게 더욱 더 잘 구현될수록 그걸 빌미로 내부의 적들이 활개를 친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두 부문이 모두 꼭 그러한 형편에 처해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
그건 데모크라시를 '민주정'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민주주의'라고 하는 바람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살펴보시라. 옛 소련 공산주의자나, 지금 한국의 종북좌파 무리처럼 민주주의 그릇 안에 사회주의-평등주의란 내용물을 담고 싶어 환장하는 헛똑똑이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런 진보적 민주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겠지만, 우린 그것에 반대했다. 민주주의라는 그릇 안에 자유주의란 위대한 비전을 담기로 합의했고, 그래서 우남 이승만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68년 전에 세웠다.
이참에 물어보자. 자유주의의 비전이란 무엇인가? 근대의 문을 열었던 존 로크와 아담 스미스의 주장처럼 정부란 국민의 동의 아래 통치를 해야 하며, 국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건 물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자민주의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인데, 많은 이들이 또 한 번 착각한다.
둘 사이의 결합이 논리적 필연이라는 생각인데, 그 역시 역사를 모르는 소리다.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란 파트너를 끌어들일까 말까를 망설였다.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저 어리석은 대중을 끌어들일 경우 자유주의의 핵심가치가 잘 유지될까를 걱정했던 것이다.
진짜배기 지식인은 없고, 가짜만 득시글
때문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아주 늦게 이뤄졌고, 영국의 경우 20세기 초에야 겨우 문턱을 넘었으니 100년 전후밖에 안 된다. 그때 비로소 21세 이상의 남자 국민들에 선거권이 처음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렇게 시행하다보니 지금 자민주의는 역사의 대세가 된 느낌이지만, 취약점은 여전하다. 이유는 이글의 서두에서 잠시 언급했던 역설 때문이다.
자민주의는 자유-평등-관용-다수결 등을 핵심원리로 하고, 국민주권과 대의제도를 제도화하는데, 그게 더욱 더 잘 구현될수록 그걸 빌미로 내부의 적들이 활개를 친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두 부문이 모두 꼭 그러한 형편에 처해있다.
일테면 지난해 대한항공 사태와 롯데 분규를 보라. 흙수저-금수저론을 증폭시키는 언론도 그렇고, 재벌 2세를 흉악한 인간으로만 묘사하는 3류 TV드라마의 홍수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온통 자본주의 욕설로 넘쳐난다. 이 와중에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소설가 복거일 같은 분은 드물고, 전 총리 정운찬 같은 동반성장론자나 경제민주화꾼들만이 득시글거린다. 마찬가지 이유로 자유민주체제도 휘청댄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복합위기 국면인데, 얼마 전 화교간첩 유우성 사건의 뒤처리를 보라.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증언(밀입북 등)도 있지만, 그가 간첩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민변-좌파매체 등이 훨씬 많아진 세상이다. 그들은 궤변에 적반하장도 서슴지 않는다.
국정원-검찰의 증거조작 위반 행위 등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국정원 개혁과 특검 실시를 주장하는 자해(自害)도 마다 않는다. 그런 무리에게 대한민국 체제수호란 완전히 남의 일이다. 행각해보라. 전 야당 대표 문재인, 서울시장 박원순이 대중적 인기가 많은가, '수상쩍은 민주주의자'인 그들의 실체를 밝히려 하는 고영주 변호사 같은 분이 더 인기가 높은가?
이 모두 민주주의 이름 아래 일어나는 괴이쩍은 현상이다. 자유민주체제가 보장해준 기본권과 자유를 이용해 체제를 흔들려는 세력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그건 민주주의 타락 혹은 민주주의 자살인데, 그 현상이 대한민국만큼 아찔한 곳도 없다는 게 평소의 내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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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한 사회 비판세력을 넘어 어느덧 내부의 적으로 변질된 종북 좌익세력이 득시글대고,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범죄집단 평양의 위협에 노출된 대한민국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험천만한 미생(未生)국가가 분명하다. /사진=연합뉴스 | ||
왜 20세기는 민주주의 죽음의 역사인가
20세기는 '민주주의 죽음의 역사'라는 점을 떠올릴 경우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몰락'은 남의 얘기일 수만은 없다. 지난 한 세기 지구촌은 방어력 없는 자민주의가 얼마나 내부의 적과 외침에 취약한가를 보여줬던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즉 1차 대전 종료 뒤 유럽 대부분이 자민주의를 채택했지만, 2차 대전이 끝날 때 살아남은 건 스웨덴 딱 한 곳이었음을 기억해두라.
2차 대전 뒤와, 1980년대 세계민주화 선풍 때 제3세계 다수와 아시아 중남미에서도 자민주의를 채택했지만, 나중에 붕괴 내지 변질된 나라가 즐비했다. 그럼 구조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자민주의가 지속가능하려면 무얼 해야 할까?
반복하지만, 지난 번 나의 글처럼 독일의 체제수호 노하우, 즉 방어적 민주주의를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건강한 사회 비판세력을 넘어 어느덧 내부의 적으로 변질된 종북 좌익세력이 득시글대고,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범죄집단 평양의 위협에 노출된 대한민국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험천만한 미생(未生)국가가 분명하다. 게다가 막 내리는 19대 국회도 민주주주의의 타락과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줬다.
입법독재 국회의 법안 가결률만 해도 16대 62.9%, 17대 50.4%, 18대 44.4%로 낮아지더니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31.6%로 추락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수사를 받게 돼 자진 사퇴한 의원만도 22명이다.
틈만 나면 각종 수당과 세비를 올리려 하고, 보좌관 월급을 상납 받고, 자식들의 취직을 위해 갑질을 하는 저들 파렴치한들이 그동안 보여준 건 민주주의의 타락이 맞다. 수호하려는 이들이 없어 휘청대는 자유민주체제의 한 켠에 민주주의를 망치려는 좀도둑들마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너와 나를 가릴 것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주의를 공짜로 여기는 몹쓸 무임승차자인지 모른다.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해보지만, 이렇게 덜떨어진 민주주의교(敎)를 섬기다가는 언젠가는 역사의 대박 대신 몰락의 길을 접어들 수도 있다. 4월 총선과 함께 정치의 계절이 한창인 지금 그걸 엄중히 묻는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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