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콘텐츠의 힘 재발견…전통 굿 녹인 멋진 퍼포먼스 재회 약속
   
▲ 조윤서 거목 엔터테인먼트 대표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품으로 드디어 무대에 섰던 그 순간 긴장감과 떨림이 아직도 온 몸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작품 속 여인의 간절함이 나의 목소리와 몸짓을 통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을까 하는 생각에 솔직히 내심 안절부절 했더랬다. 그러다가도 나를 비롯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와 춤, 음악에 집중해주는 관객들의 진지한 표정들을 보곤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만끽하기도 했다. 내 첫 자식 같은 '사랑애몽'이 우여곡절 끝에 고비를 넘어 첫 공연을 무사히 끝냈다. 다행히 많은 여러분이 박수를 쳐주고 계속해서 공연장을 찾아주어 힘든 여건 속에서도 진한 보람을 느끼며 신명나는 공연을 해나가는 중이다.

'사랑애몽'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난 뒤에 느낀 보람이나 성취감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번에 한 가지 확신이 든 점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 사람이야말로 한국 전통문화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아껴주는 최고의 관객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말과 소리, 전통 무용의 손짓 발짓, 악기에 담긴 특유의 민족 정서나 울림은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우리를 붙드는 강력한 매력을 지녔다는 점을 깨달았다. 중년의 어른들이나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 ‘사랑애몽’에 대해 보여줬던 높은 호응은 우리 것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새삼 느끼게 했다.

공연은 7월 말까지 계속 잡혀있지만, 이 공연을 서울 관객에게만 선뵌다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석과 같은 우리 고전문학이나 전통 춤, 판소리, 무용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는데 좀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줄 수 없을까?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더 우리 정신에 가까운 것, 우리의 혼을 담을 수 있는 요소를 가미하면 어떨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건 무엇일까? 그러다 내가 찾은 것이 무속신앙의 '굿'이다.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 밀고 들어온 근대 이후 우리의 '굿' 문화는 단단한 오해의 대상이 되었다. '굿' 하면 일단 현대인들은 귀신을 떠올리거나 미신이나 퇴치해야 할 악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간혹 포용적이라는 사람들이라도 비과학적인 구습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굿을 좁은 종교적 차원에서 퇴치대상으로 보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굿'이라 호칭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명이 발생한 이후로 인간과 함께 해온 인류 문화 역사의 핵심이 바로 '굿'이기 때문이다.

고대 제정일치의 사회에서 굿을 하는 행위는 제천의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류 삶의 영역이었다. 지금처럼 너무나 협소한 종교의식이나 귀신 쫓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군신화의 단군왕검은 비와 구름, 바람 등 자연을 다스리는 초인간적인 신이었다.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고 인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형벌 등을 관장하는 제사장이기도 했다. 부여, 영고, 마한, 동예와 같은 부족국가들은 때마다 하늘에 기우제, 천신제를 지내고 술과 가무를 즐겼다. 이것이 바로 '굿'의 기원이다.

이런 무속신앙의 문화는 죽 이어져 유교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도 내 가정과 마을, 국가적 차원에서 복을 기원하고 재난을 퇴치하는 의식행사, 전통문화로서 우리 삶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금도 각 지역마다 마을마다에는 다양한 굿의 행태가 전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남해안 동해안 일대의 유명한 별신굿과 같이 풍요와 복을 기는 굿은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돼 세계인에게도 널리 알릴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프리카 여러 부족국가들도 사냥을 하고 싸움을 하기 전 기우제를 지내며 춤추고 복을 비는 행위들이 전통무용, 퍼포먼스 형태로 지금도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와 서양 문물에 영향을 미친 고대 이집트에서도 제사장이 기우제를 지내고 춤을 추는 제의 무용이 행해졌다고 한다. 인류의 이런 제의가 바로 다름 아닌 '굿'이라는 형태였던 것이다. 서구와 아프리카의 이런 문화는 오늘날 그들만의 화려한 문화콘텐츠로서 자랑이 되고 있다.

각 지방 마을마다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우리 고유문화인 굿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치지 않는 뛰어난 문화콘텐츠이다. 이번 공연 이후 나는 사랑애몽에 우리만의 한(恨)의 정서가 배어 있는 '굿'을 녹여볼 작정이다. 우리 고전문학 이야기의 힘과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섞는다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이런 볼거리에 지방의 좋은 먹거리까지 어우러진다면 정말로 멋진 페스티벌이 될 수 있다.

우리 전통 굿으로 푸는 '사랑애몽'은 더 절절하게 한국인의 가슴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신명나는 공연이 관객들에게 더욱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멋진 공연으로 전국의 관객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설레일까. 서울 공연이 마무리된 후, 더 전통적이고도 창의적인 '사랑애몽'으로 전국의 관객과 만나고 싶다. 아직 서울 공연이 마무리되기도 전이지만 이런 기대감에 벌써부터 내 가슴은 뛴다. /조윤서 거목 엔터테인먼트 대표
[조윤서]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