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예산문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

최근 우리나라 사회 일각에서 모병제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은 대한민국의 국방안보 체제가 발달한 결과가 아니라 병영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 때문입니다. 하급자들에게 왕따 당한 후 병사들을 소총으로 갈겨 죽인 병장이 있는가 하면 상급 병사들의 학대와 구타에 목숨을 잃은 하급병사도 있습니다.

차제에 군인 같은 사람만을 모아 군대를 만들자는 주장이 나올 법 한 상황이기는 합니다. 정치가들 중에도 그런 방안을 제시한 사람들이 있고, 자유주의자들 중에도 차제에 모병제를 생각해 보자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자유경제원이 지난 8월 20일 주최한 경제활성화 연속 2차 토론회, ‘경제활성화 해법 원로에게 듣는다’에서 정부 경제정책과 기업환경의 실정에 관하여 발언하는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세계전쟁사, 군사제도사를 살펴보면 국민들이 병역의 의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징집된 병사들 보다는 전문 직업으로서 군을 택한 모병제 하의 군사들이 오히려 더욱 전투 효율이 높았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례가 대단히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미국군은 장교들은 물론 이지만 병사들도 프로페셔널 솔져 (Professional Soldier) 라고 부르기 족할 정도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징병제하에 징집된 병사들을 가지고 싸웠던 월남 전쟁과 오늘 미국이 모병제의 군대를 동원해서 싸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보면, 모병제에 의한 군대가 얼마나 막강한 군대가 될 수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병제를 택할 경우 전문화 된 군대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군을 직업으로 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업의식, 국가에 대한 소명 의식 등이 높은 프로페셔널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경제진화연구회 토크파티 <군대의 진화: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포스터 

그런데 이 같은 장점이 있는 모병제에 대해 본인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대한민국의 상황이 모병제의 군대를 허락하는 상황이 아직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선,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들 “모두” 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헌법에서 요구한 국민의 의무인 군인의 임무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업무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헌법부터 바꾸어야 할 것인데, 대한민국 헌법이 병역의 의무를 규정했던 당시에 한국이 처했던 안보 상황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처한 국가안보 상황은 별로 달라진 바 없다고 생각됩니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중요한 의무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그래야 할 국가안보상의 조건이 형성 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논의되는 모병제 논의는 이 같은 심각한 안보 구조가 평화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데서 야기된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개선해야 할, 그리고 능히 개선할 수 있는 병영문화에서 연유한 문제를 고치는 방법으로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자는 주장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는 너무 과격하고 부적절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경제진화연구회 토크파티 전경 

둘째, 한국과 같은 경우 국가안보는 미국 혹은 유럽의 나라들, 즉 국가안보 문제가 대한민국처럼 심각하지 않는 나라들과는 달리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안보가 필수인 대표적인 나라가 이스라엘인데 여자들마저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분업을 강조하고 교역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비조인 아담 스미스도 국가안보의 경우 시장의 원칙이 적용 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국가안보는 국가가 담당해야 할 일입니다. Public을 넘어 National 차원의 일이며 결코 Private 한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같은 경우 어떻게 모병제에 의한 막강 군대의 유지가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서 우리의 경우 모병제가 곤란하다는 더 심각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 됩니다. 바로 다음의 이유가 우리나라의 경우 모병제가 어려운 세 번째 이유입니다.

미국의 경우 우선 군대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가장 존경 받는 직업의 하나이며 가장 훌륭한 인재가 모이는 곳입니다. 미국 사회의 여러 제도 들 중에서 국민으로부터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조직이 바로 군대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우는 판이 합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아마도 천년 이상 무인(武人)을 경시하고 깔보는 문화를 길러 왔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연세대 정외과) ROTC 후보생이 되면 장교로 근무할 뿐 아니라 복무기간이 병사보다도 짧다는 메리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ROTC’ 를 ‘바보TC’ 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군인을 ‘군바리’라 불렀고 군대 가는 것을 ‘때우러’ 간다고 말하고 군대에 있는 동안을 ‘썩는’ 세월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이미 DNA 수준의 물질이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군에 대한 인식과 상무정신이 미국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상무정신이 높아지지 않은 채, 군대를 모병제로 한다면 정말 아무 데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직업(병사의 경우) 이 되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우수하지도 못하고 불만에 가득 찬 젊은이들이, 우수하고, 부유하고, 만족스럽게 도시의 안락한 집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 동료 젊은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총을 들고, 밤새 보초를 선다? 우리 국민들의 군에 대한 인식의 DNA에서 그런 일을 현재 가능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 우리들, 그리고 우리 아들들이 ‘모두’ 군대에 가서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는 군가를 목청 높여 부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 번째는 모병제로 만든 대한민국 군대가 국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문제에 대한 의문입니다. 현재 징병제 하의 대한민국 군대는 원천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따져서 남과 비교해 보아야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다 가야 하는 곳이기에 직업으로 인식 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육사, 해사, 공사는 미국 최고의 엘리트 고등학생만이 입학 할 수 있는 명문 대학이며, 교육수준, 졸업 후 얻을 수 있는 금전적 대우, 사회적 지위 등이 미국 최고 일류 대학들 보다 오히려 더 좋을 정도입니다. 병사들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성적, 학업 성취도 등이 미국의 평균 보다 높은 사람들로 충원 되고 있으며, 상당기간 근무 후 받게 되는 각종 혜택이 그들과 유사한 또래들이 얻을 수 있는 것 보다 대단히 양호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병제로 구성된 군대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요? 사회적인 자존심, 급여 등이 자랑스러운 수준이 되고 국민이 존경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까요? 군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인식이 거의 180도 바뀌어야 가능한 제도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모병제를 하기 위해 우선 우리 국민의 군에 대한 본질적인 사고가 달라져야 될 것입니다. “국가의 정의와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할 수 있느냐?” 의 질문에 “그럴 수 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수십 % 이상 되는 나라여야 모병제가 가능한 나라가 아닐까요? (미국 80%,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은 현재 약 20%, 필자의 비과학적 여론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생각 됩니다)

다섯 번째는 돈 문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을 70만 대군이라고 말합니다. 이중 절대 다수는 대략 월급 10만 원 정도를 받는 징집 병사들입니다. 현재 10만원 수준인 병사들의 월급은 모병제가 되면 얼마정도가 되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모병으로 군인이 된 병사는 최소한 공무원 평균 월급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인데 대략 200만원이라 생각하면 모병 병사 1인은 징집병사 20명 정도의 월급이 들어가는 일이 되겠습니다. 현재 월급으로 지급되는 돈 가지고 모병 2-3만명 정도의 월급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아무리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40-50만 명 정도의 병력이 필요할 터인데 그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의문입니다. 모병의 경우 국가가 제공하는 식사 및 주거시설 역시 지금 수준보다는 대폭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돈 문제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물론 군인 이라는 직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일 것이지만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은 국방비가 더 지출 되어야 할지의 문제를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글의 제목은 통일 이전에는 징병제가 유지한다고 주장했지만 통일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경우 모병제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 주변국에 비해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대한민국이 군대를 모병제로 유지할 만한 여유가 생길지 의문입니다.

한국전쟁이후 대한민국 군대는 국민 교육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 국민국가의 건강한 시민이 될 수 있는 교육을 군복무 기간을 통해 받았고 대한민국의 주축으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있어서 “병역필(兵役畢)” 이라는 자격 아닌 자격은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했고 인생을 살아가며 난관에 처할 때마다 ‘거기서도 버텼는데..’ 라며 용기를 북돋우는 준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나약해 졌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나약 해진 것입니다. 군복무를 통해 몸은 물론 마음도 건강해지는 계기가 될 있도록 병영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징병제는 지난 60년 이상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허리가 되는 인력을 양산하는 공장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됩니다.

2014년 9월 25일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에서 열린 경제진화연구회 토크파티 <군대의 진화: 징병제냐 모병제냐>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토론문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