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위 실수는 동반자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믿을건 오직 자신뿐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31)- 코스에서의 나의 불행은 남의 불구경일 뿐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어느 날 골프마니아 네 명이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라운드 도중에 한 명이 옆 홀에서 날아온 볼에 맞아 쓰러졌다. 금방 팔에 퍼런 멍이 들어 힘줄이나 뼈의 이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동반자들은 캐디를 시켜 비상전화로 클럽하우스에 연락하도록 했다. 금방 골프장 직원이 전동 카트를 타고 나타나 쓰러진 사람을 전동 카트에 태웠다. 직원이 동반자 중 누군가가 함께 탈 줄 알고 기다리자 세 명의 사나이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남은 홀을 마저 끝내고 따라 갈 테니 먼저 병원으로 데려 가주시오.”
직원이 전동 카트를 몰고 사라지자 나머지 셋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골프를 즐겼다.
이 이야기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도 똑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었다.

골프장에서 동반자가 나의 불행을 측은히 생각하고 위로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수준급의 골퍼임을 자처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입으로는 ‘골프는 남을 배려하는 신사의 게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라운드 중에 결코 동반자를 배려하려 들지 않는 속물 골퍼들을 자주 대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동반자의 불행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불행에 따른 반사이익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 골프장에서 동반자가 나의 불행을 측은히 생각하고 위로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동반자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의 재미를 줄뿐이다. 믿을 데라곤 자신 밖에 없다./삽화=방민준

인도의 신비주의 철학자이자 구루인 오쇼 라즈니쉬의 유머 모음집 『지혜로운 자의 농담』의 주인공인 천의 얼굴을 가진 우리의 사랑스런 물라 나스루딘이 속물골퍼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징검다리 근처에 앉아 있던 나스루딘은 열 명의 장님들이 그 강을 건너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는 한 사람 당 1페니를 받고 강을 건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들은 나스루딘의 제의를 수락했고 나스루딘은 그들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장님을 강 건너 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나스루딘이 열 번째 장님을 건네주려 했을 때 이 불행한 장님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떠내려 가버렸다.
 

무언가 사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아홉 명의 장님 생존자들이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나스루딘!”
물라 나스루딘이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1페니를 덜 받게 되었을 뿐입니다.”

또 다른 일화도 상대방의 불행을 기화로 이익을 챙기려는 속물들의 추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날 유태교의 율법학자인 랍비와 가톨릭 성직자가 각각 보트를 타고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가톨릭 성직자가 물고기의 입질에 흥분해서 날뛰다가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두어 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올라오자 랍비가 허우적대는 가톨릭 성직자에게 소리쳤다. “어이 신부친구! 당신이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내가 당신의 보트를 가져도 되겠소?” 성직자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좇아 남의 불행을 방관하며 본분을 망각하는데 동반자를 혼내주려고 칼을 갈고 나온 골프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골프장에서 당신의 불행과 실수는 동반자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의 재미를 줄뿐이다. 믿을 데라곤 자신 밖에 없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