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유성룡 뒤엔 '하회의 선비' 형 류운룡이 있었다
수정 2015-02-15 12:22:49
입력 2015-02-15 12:18:43
임창규 기자 | mediapen@mediapen.com
| ▲ 징비록 류성룡 역 김상중./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포스터 캡쳐 | ||
'징비록'을 쓴 류성룡의 고향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이다. 서애 류성룡은 풍산류씨의 후손으로 형 겸암 류운룡과 함께 전란의 위기에 휩쓸린 조선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인물이다.
서애 류성룡은 조정에 나가면서 언제나 형 류운룡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위에 있는 겸암정사는 류성룡의 형 류운룡이 나라를 걱정하며 수신했던 곳으로 지금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 ▲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포스터 | ||
류성룡의 형 류운룡은 높은 학식과 혜안으로 조선의 위기를 일찍 간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류운룡은 자신은 고향에서 부모님을 돌볼테니 너는 출사하여 위기의 조선을 구하라며 동생 류성룡의 출사를 적극 권했다.
형인 류운룡은 동생 류성룡의 정신적 스승이자 선비의 사표로 평생을 고향에 보내며 류성룡이 조정 일에 몰두할 수 있게끔 이끌었다.
현재 하회마을에는 겸암 류운룡의 집과 불과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류성룡의 집이 있다.
7년간의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은 당시 전시 총사령관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생생하게 기록한 것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귀중한 전사 고증의 사료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