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보다 인플레가 더 중요...일본은행, 부양 기존 입장 고수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최근 20년 만에 최고 약세를 기록,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대규모 금융완화 기조를 바꿀지 주목된다.

최근의 급격한 엔화 약세는 국내·외, 특히 미국과의 금리차에서 비롯됐으므로, 미국과 마찬가지로 금리를 올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엔화 가치 방어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 달리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 속도가 느린 데다, 막대한 규모로 발행된 국채 상환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 카드를 쓰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28.21엔까지 올라, 지난 2002년 5월 이후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13거래일 연속 오름세로, 블룸버그통신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71년 이후 반 세기만의 최장 약세다.

지난 3월 이후 11%나 환율이 뛰어, 일본 엔화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평가다.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사진=연합뉴스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의 도이 겐타로는 기술적으로 엔/달러 환율이 135엔 때까지도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급격한 엔화 약세의 원인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확대가 꼽히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일본은행은 코로나19 이후의 대규모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일 금리차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엔화 가치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엔저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라고 말해온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19일 중의원에 출석, 급격한 엔화 가치 하락이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견해를 수정했다.

스즈키 준이치 재무상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급격한 (환율)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 등의 통화당국과 긴밀히 의사소통하면서,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을 하려면, 물가 상승을 각오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조강래 한국은행 도쿄사무소 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물가 상승세가 안정적으로 지속돼야, 일본은행의 정책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물가상승률 2%의 지속성과 경기 회복을,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 변경의 조건으로 꼽았다.

금리를 올리면,막대한 규모로 발행된 국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국채 잔액은 작년 말 기준 처음으로 1000조 엔(약 9650조원)을 넘어서, 일본은행이 금리를 1~2%포인트 올리면 정부의 연간 원리금 부담액이 3조 7000억~7조 5000억 엔(35조 7000~72조 3000억원) 늘어나는 구조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엔화 약세보다는 인플레이션이 더 중요하다"며 "일본과 미국의 물가 궤적, 통화정책 스탠스 차이 등을 감안하면, 엔화 약세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