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4월호 수필가 등단 <동쪽을 향한 나의 행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총장)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동녘 동(東)’이다. 동과 무려 5번의 인연을 갖고 있다. 우선 돌림자인 동관이란 이름에서. 둘째는 태어난 곳이 동대문이었다. 북에서 월남한 선친이 동대문에서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군대를 마치고 85년 동아일보를 선택한데서 동과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한 것. 동아일보는 당시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투쟁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민족지이면서,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

   
▲ 이동관 전 홍보수석(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총장)이 동녘동자와 관련해 남다른 인연을 다룬 에세이로 수필가로 등단했다.

동자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93년 도쿄(동경)특파원으로 발령받은 것. 미국유학을 꿈꾸던 당시에는 워싱턴 특파원을 가고자 했다. 운명은 그를 도쿄로 가게 만들었다. 다섯 번째는 막내아들이 태어난 지역과 인연이 있다. 동경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이즈반도의 이토(伊東)온천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중 귀한 아들을 얻은 것. 위로 연년생 딸만 둔 상태에서 다섯 살 밑의 막내아들은 남다른 자식이었다.

이전수석에게 동자는 어떤 의미인가? 다섯 번의 인연은 무엇인가? 그는 80년대 후반 인기를 끈 예술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과 연관지어 의미를 찾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게 자신의 삶을 관통한 주제어와 영화 제목의 한 글자가 일치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동녘 동(東)’ 자다.

서쪽나라 인도 왕자였던 달마는 왜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동쪽으로 온 것일까? 이 전수석은 “현실의 안락함을 버리고 구도의 길에 나섰던 그의 행보는 일상에 안주하지 말라는,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은유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쪽은 더 이상 내게 우연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그만 쉬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나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현실의 힘이라고 했다.

이 전수석은 지금도 가능하면 동쪽을 향해 앉는다. 청색 계통의 옷도 즐겨 입는다. 동쪽이 상징하는 것은 정신의 우월성이라는 것. 서당에서 한학을 통해 동은 ‘물질 vs 정신’의 구도에서 정신이며 절기로는 봄이며 색깔로는 청색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그에게 동은 다가오는 봄처럼 희망의 메시지이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의 정신이다. 그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인생은 멈춰서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묘비명이 세워지는 곳 아닐까?”라고 했다. “길의 어디에서 행운을 만날지, 악운을 만날지 모르지만 나는 동쪽으로 계속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전수석이 수필가로 등단했다. 월간 에세이 4월호에 <동(東)쪽을 향한 나의 행로>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동쪽과의 다섯 번의 인연을 소재로 논리정연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위트넘치게 써내려갔다. 앞으로 6개월간 자신의 삶의 궤적과 체취를 전하게 된다.
이 전수석의 첫 수필은 소중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울림도 있다. 동이 주는 의미가 독자들에게 탄탄하면서도 잔잔한 공감을 주고 있다. 동은 일상과 세속에 매몰된 우리 삶의 나태를 꾸짖는 죽비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북극성이기도 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소중한 꿈을 향해 정진하라는 것으로 들린다.

   
▲ 월간 에세이4월호에 실린 이동관 전 수석의 수필 <동쪽을 향한 나의 행로>.

다음은 이 전수석이 월간에세이 4월호에 게재한 <동쪽을 향한 나의 항로> 전문이다.(편집자주)

1980년대 후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예술영화가 화제를 모은 일이 있다. 이 영화는 당시 뛰어난 영상미와 예술성 때문에 국제영화제에서 금상까지 받았지만, 나에게는 화두(話頭)가 주는 울림이 기억에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게 나의 삶을 관통한 주제어와 영화 제목의 한 글자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녘 동(東)’ 자다.

동 자는 내 삶에 마치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우선 내 이름에 동 자가 들어있는 것은 돌림자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동대문 부근이었다. 북에서 월남한 부모가 이곳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학원을 마친 뒤 군대를 제대할 무렵인 1985년 겨울 나는 추호의 의심도 좌고우면도 하지 않고 동아일보를 지망해 기자가 됐다. 희미하게나마 민주화의 동녘이 터오기 시작하던 때였기에 민족지요,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는 평을 받아온 동아일보를 선택하는 데 조금의 주저나 망설임이 없었다.

이후에도 동 자와의 연은 계속 이어졌다. 1993년 나는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았다. 대학원 재학 중 미국학연구소 조교 일을 하며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학술회의를 뒷바라지하기도 했고, 한때 미국유학을 꿈꾸기도 했던 터라 특파원을 가게 된다면 워싱턴 특파원을 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도쿄 특파원 발령이 났다. 히라가나조차 제대로 몰랐던 나는 하루 16시간 일본어를 공부하는 3개월의 용맹정진 끝에 현지에 부임했다.

위로 연년생 딸 둘을 두고 있던 나는 도쿄특파원 근무 중 둘째와 다섯 살이나 터울이 지는 막내아들을 얻었다. 도쿄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이즈반도의 이토(伊東) 온천에 여름휴가를 가서였다.

동 자와의 인연이 5번이나 겹친 것이다. 이쯤 되면 나의 삶을 상징하는 휘장을 동녘 동자 오륜기로 그려 남긴다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말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고 성격은 운명을 만든다. 이 말처럼 내게 우연히 중첩된 동녘 동이라는 글자와의 인연은 언제부턴가 어슴푸레하게 나의 지향성을 자기 암시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귀국한 뒤 나는 서당을 드나들며 접하게 된 한학을 통해 동은 ‘물질 vs 정신’의 구도에서 정신이며 절기로는 봄이며 색깔로는 청색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그러면서 동녘 동자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막연했던 느낌과 예감은 점점 더 운명적 확신으로 단단해졌다.

입사 20년이 됐을 때 나는 정치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이 됐다. 어느 날 문득 입사초기 수습기자 시절 동기생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장래 희망을 얘기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기자와 특파원을 거쳐 논설위원이 돼 칼럼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명칼럼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은 채 이루지 못했지만 우연히도 대략 3년 단위로 부서를 바꾸며 내가 그렸던 인생의 디자인이 거짓말처럼 이뤄졌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화자찬 하려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것도, 집요한 의지를 갖고 어떤 자리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주위로부터 ‘운이 좋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는 그때그때 닥치는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면서 다만 ‘어떤 일상의 안온함에도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막연한 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글 첫머리에 인용한 영화 제목처럼 서쪽나라 인도의 왕자였던 달마는 왜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동쪽으로 온 것일까? 현실의 안락함을 버리고 구도의 길에 나섰던 그의 행보는 일상에 안주하지 말라는,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은유의 메시지다.

나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더더욱 구도자나 수행자도 아니다. 나의 동녘 동 자와의 인연도 지극한 우연의 중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쪽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우연이 아니다. 단순한 자기암시를 넘어 ‘이쯤에서 그만 쉬자’는 유혹을 뿌리치도록 나태를 채찍질하는 현실의 힘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가능하면 동쪽을 향해 앉고 청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는다. 동쪽이 상징하는 것은 정신의 우월성이요, 다가오는 봄처럼 희망의 메시지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의 정신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어야 한다. 인생은 멈춰서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묘비명이 세워지는 곳 아닐까? 길의 어디에서 행운을 만날지, 악운을 만날지 모르지만 나는 동쪽으로 계속 걸어가야겠다.


<프로필> 1957년 서울 출생/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미 하버드대학 니만 펠로우(Nieman Fellow)/동아일보 도쿄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위원, 청와대 홍보수석, 대통령 언론특보, 언론문화 특임대사 역임. 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총장. [미디어펜=이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