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지수 해마다 하락…'채찍'조다 '당근'이 더 큰 적

   
▲ 황근 선문대 교수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다면, 노무현 정부는 집권 5년 내내 ‘언론과의 전쟁’을 벌인 정부로 기억된다. 2003년 집권하자마자 ‘안티조선’을 비롯한 좌파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조선일보사 앞에서 벌어졌던 선동 퍼포먼스 같은 ‘조·중·동 죽이기’가 전방위적으로 추진되었다.

지상파방송사들은 미디어 비평프로그램들을 통해 연일 보수신문들을 공격하였고, 진보 성향의 한겨레, 경향신문, 서울신문(대한일보로 제호변경)을 지원해 이른바 ‘조·중·동 대 한·경·대’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또 인터넷 공간을 선점하면서 지금까지도 온라인 저널리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5년 신문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신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이 법은 2008년 대법원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폐지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과의 전쟁’이 극치에 달한 것은 정권말기 강행한 ‘기자실 폐쇄’ 사건이다. 흔히 ‘언론 대못박기’라고 지칭되는 정부부처 기자실 폐쇄와 출입통제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언론사 특히 보수신문사들에 대한 적대감이 어느 정도이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보수 언론을 죽이겠다는 적대 의식이 정권의 존재 이유이었던 것 같았던 느낌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가 언론과 전면전을 벌였다면 현 정부는 언론과의 싸움을 회피하는 전략이 아닌가 싶다. 이전의 좌·우파 정권들이 모두 언론과의 갈등 때문에 고전했다는 선례를 의식해서인지, 언론 정책 자체를 회피하려 하는 느낌이다.

   
▲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고 한다. 그것은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언론의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언론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해주는 ‘대자적 존재’로 보라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언론과의 전쟁도 문제지만 언론의 실종은 더 큰 문제이다. /사진=연합뉴스
정권 출범 초기에 ‘언론’이라는 용어를 ‘창조경제’라는 말로 치환시켜 언론의 정치·사회적 역할보다 경제·산업적 역할만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관련 부처나 기구들의 수장들이 언론과 무관하거나 연관성이 별로 없는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보도전문 채널의 사장도 언론과 아무 인연도 없는 경제계 인사가 부임했다.

물론 언론관련 정책이나 언론사 운영을 언론인들이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언론과 무관한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인사들을 앉혀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려한다는 비판에서 비껴나겠다는 소박한 생각도 나름 이해된다. 물론 정치권력 입장에서 언론과 갈등하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갈등 없이 정치권력과 공생하는 언론은 어쩌면 더 위험하다. 언론자체가 권력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언론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현 정부의 언론정책의 맹점이 있는 것이다. 언론의 존재감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이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언론을 상업화시키는 것이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을 순치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또 통제하기도 용이할 수 있다. 이처럼 언론정책이나 언론사가 경제 같은 외부논리에 지배되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언론의 정치적 역할 자체가 소멸된다는 것은 민주주의 근간인 여론을 크게 의식하지 않겠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언론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우파의 언론정책은 언론의 정치지형도를 불균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경제적 공간으로만 인식했던 우파진영과 달리 좌파진영이 인터넷공간에 견고한 정치적 진지를 구축해 놓았던 일이 재연될 수 있다. 현 정부의 아주 소박한 언론정책은 장기적으로 언론영역에서 우파의 공간을 크게 위축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최근 3년간 ‘국경 없는 기자회’나 ‘Freedom House’ 등이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가 매년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통제를 중시하는 진보성향의 ‘국경 없는 기자회’ 평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수성향이 강한 ‘Freedom House’ 평가에서도 세계 70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정치적 통제보다 경제·사회적 통제가 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마디로 언론과 전면전을 치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언론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그것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토대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은 ‘채찍’이 아니라 ‘당근’이다. 언론 그 자체를 인정하는 언론관과 정책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