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결국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밸류체인을 강타했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 중 하나인 카타르가 한국 등을 상대로 한 장기 공급 계약에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국내 에너지 수급에 초비상이 걸렸다. 산업계 전반에 나프타 공급난 등 원자재 대란 조짐에 이어 LNG 공급망마저 흔들리며 파장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SK이노베이션 E&S의 LNG수송선이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된 LNG를 싣고 보령 LNG터미널에 처음 입항하고 있다./사진=SK이노베이션 E&S 제공
25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최근 한국, 이탈리아, 벨기에, 중국 등 4개국과 체결한 일부 LNG 장기 공급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을 공식 선언했다. 무력 충돌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정상적인 해상 운송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주요 배경이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즉각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했다. 이날부터 공공기관 차량 150만 대를 대상으로 5부제를 의무화했으며, LNG 수급 불안을 메우기 위해 원전 발전을 확대하고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일정을 조정하는 방안까지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LNG 산업의 밸류체인은 가스전 탐사·생산(Upstream), 액화 및 해상 운송(Midstream), 기화 및 발전·공급(Downstream)으로 이어진다. 이번 사태는 밸류체인의 핵심 허리인 운송 부문이 마비된 것으로, 장기 계약에 의존하던 각국 수요처들이 연쇄 셧다운 위기에 직면했다. 안정적인 물량 유입이 막히자 당장 가동을 멈출 수 없는 각국 에너지 기업들은 단기 현물(Spot) 시장으로 일제히 방향을 틀고 있다.
시장 구조 역시 급변했다. 업계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LNG 의존도가 높은 중국, 일본은 물론, 카타르와 계약이 묶인 유럽 국가들까지 한꺼번에 비(非)중동 지역 물량 확보전에 뛰어들면서 현물 시장이 '공급자 우위'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정된 카고(Cargo)를 두고 벌어지는 아시아와 유럽 바이어 간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 SK E&S·포스코인터, 기존 해외 자산 활용 돌파구 모색
국내 가스 수급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독자적인 밸류체인을 구축해 온 주요 민간 직도입 발전·에너지 기업들의 대응 전략에 이목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이 과거 선제적으로 확보해 둔 글로벌 자산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최대 민간 LNG 사업자인 SK E&S의 경우,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오랜 기간 투자해 온 비중동 지역 포트폴리오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도입 물량을 대체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프리포트(Freeport) LNG 터미널 운영 노하우와 호주 바로사(Barossa) 가스전 등 자체 업스트림 자산을 적극 활용해 밸류체인 공백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역시 글로벌 종합상사로서 축적한 트레이딩 역량과 자원 개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룹 차원에서 인수한 호주 자회사 세넥스에너지(Senex Energy)의 가스전 자산과, 전 세계에 뻗어 있는 글로벌 트레이딩 데스크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단기 현물 물량을 발 빠르게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 수입을 넘어 탐사부터 트레이딩까지 내재화한 역량이 빛을 발할 시점이라는 평가다.
아울러 국가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해관계자 간의 전략적 협력 체계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민간 직도입사들이 자체 물량 확보를 넘어 한국가스공사 등과 '에너지 수급 협의체'를 긴밀하게 가동해 물량을 교환하거나 글로벌 시장에서 공동 구매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충격을 분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카타르의 불가항력 선언은 단일 공급망에 의존하는 밸류체인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핵심 사례"라며 "미국, 호주 등 비중동 지역의 자산을 폭넓게 확보하고 고도화된 트레이딩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이번 위기 국면에서 유연한 대처 능력을 보여주며 향후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