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대한민국 전자와 화학 산업의 기틀을 닦은 LG그룹이 27일 창립 79주년을 맞았다. 1947년 부산의 작은 화학공업사에서 출발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LG는 80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다시 한번 ‘위기 속의 기회’를 정조준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수요 위축 여파로 그룹 전반의 실적이 다소 주춤한 상태지만, 재계에서는 오히려 특유의 ‘저력’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 경영 역사상 흥망성쇠는 필연적인 데다 지난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숱한 파고를 넘으며 성공해온 DNA가 있기 때문이다.
1976년 1월, 구자경 회장(왼쪽 앞줄)이 LG 최초의 자체 사옥인 럭키빌딩(현 메트로타워)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 ‘가전 명가’ 자존심 넘는 사업 재편… 전 계열사 ‘체질 개선’ 박차
그룹의 심장부인 LG전자는 전 세계에서 가전(H&A) 사업만으로 압도적인 지배력과 수익성을 증명하는 ‘유일무이한 기업’으로 꼽힌다. 월풀 등 글로벌 강자들이 고전하는 상황에서도 위상을 수성하는 비결은 단순 제조를 넘어선 ‘차별적 고객 경험’에 있다.
특히 최근 승부수로 던진 ‘가전 구독’ 서비스는 실적 정체기를 돌파할 핵심 동력으로 급부상했다.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고객 생애 주기 전반을 관리하며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이 모델은, 제조 중심의 기업 체질을 서비스와 설루션 중심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구독 경제의 안착은 LG가 그리는 ‘또 다른 내일’을 현실화할 강력한 엔진이 될 전망이다.
주력 계열사들 역시 단기 부침을 딛고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의 사업 구조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LG이노텍은 차량용 카메라 모듈과 반도체 기판 등 고부가 가치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LG유플러스 또한 AI 전환(AX)을 선언해 플랫폼 기업으로의 진화를 통해 성장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LG가 전시에 선보이는 품목 설명(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순): 락희화학공업사 '럭키크림', 락희화학공업사 ‘럭키춘향편’ 광고, 금성사 'A-501' 라디오, LG전자 LED 사이니지(경주 세계유산 미디어 홍보관 ‘살롱 헤리티지’), LG디스플레이 투명 OLED(미국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YCC PARTY’), LG전자 올레드 TV /사진=LG 제공
◆ “흥망성쇠는 경영의 순리”… ABC 전략·지배구조 혁신으로 뒷심
업계에서는 현재의 ‘숨 고르기’를 미래 100년을 향한 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으로 평가한다.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가속화된 ABC(AI, 바이오, 클린테크) 전략이 그 중심에 있다.
LG화학은 양극재 등 전지 소재와 혁신 신약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 중이며,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구간에도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유지하며 포스트 캐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보여준 지배구조의 변화 역시 이러한 저력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뿐만 아니라,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행보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이번 주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주요 상장사의 이사회 의장직을 사외이사에게 전격 개방한 점이 눈길을 끈다.
LG전자와 화학, 에너지솔루션 등 핵심 계열사가 대거 합류해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임하던 관행을 깨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했다. 경영 투명성을 높여 실적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경영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다.
구광모 LG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로봇 개발 스타트업 '피규어 AI'에 방문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제공
◆ 80주년 향하는 발걸음… ‘인화’가 만든 ‘아름다운 이별’의 품격
LG 79년사를 관통하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2005년 단행된 GS그룹과의 계열사 분리다. 구 씨와 허 씨 가문이 57년간 이어온 동업 관계를 잡음 없이 정리한 이 사건은 재계에서 ‘아름다운 이별’의 대명사로 불린다.
당시 LG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인화(人和)’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질서 있는 분리를 이뤄냈고, 이는 양 그룹이 전문성을 강화하며 동반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인화 정신에 구광모 회장의 ‘실용적 혁신’이 더해진 LG는 이제 79년 전 ‘럭키크림’의 도전 정신을 AI와 클린테크로 이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독보적인 가전 경쟁력과 구독이라는 신사업, 계열사 전반의 체질 개선 노력이 ‘아름다운 이별’을 가능케 했던 LG만의 품격과 조화를 이루며 다시 한번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