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소윤 기자]건설업계가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표준화 설계' 역량이 향후 경쟁력을 가를 핵심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단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딩카 바티아(Dinkar S. Bhatia) 엑스에너지 CCO(최고영업책임자, 왼쪽 다섯째)와 배종식 DL이앤씨 플랜트사업본부 부본부장(왼쪽 여섯째)이 서울 마곡동 본사에서 열린 SMR 표준화 설계 계약 체결을 기념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DL이앤씨
29일 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최근 미국 원전 기업 엑스에너지(X-energy)와 SMR 표준화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약 1000만 달러(한화 약 150억 원) 수준으로, 내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가 SMR 표준화 설계를 직접 수행하는 첫 사례다.
업계에서는 이번 DL이앤씨의 계약을 계기로 '기술 표준'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 물량 확보뿐만 아니라 향후 시장 지형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MR은 통상 300MW 이하의 전력을 생산하는 소형 원전으로, 주요 설비를 모듈 단위로 제작해 공장에서 사전 생산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반면 대형 원전은 공사 기간이 길고 초기 투자비 부담이 크다.
표준화 설계를 토대로 동일 모델의 반복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차별화 포인트다. 설계 변경을 최소화해 공정 전반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공기 지연이나 비용 초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다. 전력 수요가 제한적인 국가나 도서지역, 산업단지 등 다양한 입지에 적용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강점으로 꼽힌다.
표준화 설계는 원전 건설의 뼈대를 구성하는 작업이다. 발전소 내 원자로와 터빈, 냉각계통 등 주요 설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작동할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기반이 된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표준화 설계 역량은 향후 시장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주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표준화 설계를 확보할 경우 발주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수주 기회 확대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원(NNL)에 따르면 2035년까지 전 세계 SMR 시장은 85GW∙ 300기, 5000억 달러(약 75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또한 2050년 전 세계 SMR 누적 투자금액이 최대 6700억 달러(한화 약 1000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건설사들도 잇달아 SMR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물산은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의 기본설계를 마치고 최종투자결정(FID)을 앞두고 있다.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본격적인 EPC(설계·조달·시공) 수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현대건설도 국내외 대형 원전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SMR 기업들과 협력에 나서고 있다. 기존 대형 원전 레퍼런스를 발판으로 차세대 원전 시장에서도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대우건설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확정한 데 이어 미국·베트남 등 신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추가 기회를 모색 중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표준화 설계 확보 여부는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초기 레퍼런스를 확보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