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글로벌 해운업 탈탄소 규제가 ‘통합’이 아닌 ‘분산’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당초 단일 기준으로 추진되던 국제 규제 체계가 정치적 갈등으로 흔들리면서, 오히려 지역별 규제가 병존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탄소세 도입 여부보다 이 같은 규제 구조 변화가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국제해사기구에 넷제로 프레임워크(NZF) 도입 중단 및 일정 연기를 공식 요구했다.
NZF는 해운업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사실상 ‘글로벌 탄소 가격 체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해당 제도가 해운업과 에너지 산업 전반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한 정책 지연을 넘어 글로벌 규제 체계 자체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회원국 간 입장 차가 확대되면서 단일 규제 도입은 사실상 지연 또는 좌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NZF 관련 논의 과정에서 진행된 표결에서도 57개국이 일정 연기에 찬성한 반면 49개국은 반대, 21개국은 기권하는 등 의견이 크게 엇갈리며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여기에 미국이 올해 10월 예정된 임시회의 취소와 함께 승인 절차 연기를 공식 요구하면서 도입 일정이 최대 12개월가량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공백을 지역 규제가 빠르게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유럽연합은 이미 해운을 배출권거래제(ETS)에 포함시키며 규제 적용을 본격화했다”며 “글로벌 기준이 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로썬 EU 규제가 사실상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는 항로별로 서로 다른 규제를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규제 분산’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동일한 선박이라도 유럽 항로에서는 ETS 비용을 부담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별도의 환경 규제를 적용받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운임 산정과 선대 운영의 복잡성을 높이고, 비용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해운사 역시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유럽 노선 비중이 높은 국적 선사들은 ETS 확대에 따른 직접적인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동시에 글로벌 단일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노선별 규제 대응 전략을 별도로 구축해야 해 운영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노선별 수익성 격차 확대와 운항 전략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향후 해운 경쟁력이 운임이 아닌 ‘규제 대응 능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자금력과 친환경 투자 여력이 있는 대형 선사와 그렇지 못한 선사 간 격차가 확대되며 시장 재편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탄소 규제 강화’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통합 규제가 지연되는 사이 지역 규제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며 “이는 비용 증가 뿐 아니라 올 한해 운영 전략 전반을 재편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