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이란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유럽 전기차(EV) 시장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방 수요 부진과 각국의 정책적 지원 축소로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를 겪고 있던 국내 배터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사진=LG에너지솔루션
29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휘발유 가격 급등이 유럽 전역의 온라인 자동차 플랫폼에서 중고 전기차 판매를 강하게 밀어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외신들은 이같은 현상을 주유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차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초기 징후로 분석했다.
실제로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브랜트유 가격이 40% 이상 폭등하며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등 에너지 수급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다. 여기에 지정학적 위기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부채질하면서 자동차 유지비 등 총소유비용(TCO)에 대한 유럽 소비자의 비용 민감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말부터 주요 유럽 국가들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삭감 및 폐지하며 신차 수요가 얼어붙었지만 내연기관 차량의 연료비가 이를 상쇄할 만큼 급등하자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중고차 시장부터 전기차 선호도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 구조 변화는 유럽 현지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K-배터리 3사의 실적 회복에 직접적인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르노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OEM)들의 전동화 전환 속도 조절 탓에 현지 공장 가동률 유지와 밸류체인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폴란드와 헝가리에 위치한 핵심 배터리 공장들의 가동률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가중된 바 있다.
하지만 연료비 부담 회피 심리가 중고차를 넘어 신형 전기차 수요로 이어질 경우 시장의 판도는 변하게 된다. 완성차 업체들이 쌓아둔 전기차 재고가 소진되면 지연됐던 배터리 셀의 신규 발주가 재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배터리 제조사를 넘어 양극재, 음극재, 동박, 분리막 등을 공급하는 국내 배터리 소재 밸류체인 전반의 물량 정상화와 수익성 회복으로 직결된다.
다만 수요 회복이 곧바로 K-배터리의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느냐다. 현재 유럽시장은 CATL과 BYD 등 중국 기업들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무기로 공격적인 점유율 확장을 펼치고 있는 최대 격전지다. 특히 고유가로 인해 친환경적 당위성보다는 ‘비용 절감’이 전기차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 된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보급형 모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K-배터리 업계는 기존 주력인 하이니켈 기반의 프리미엄 시장 방어에 나서는 동시에, 미드니켈(Mid-Ni)과 고전압 미드니켈, 하이망간(Mn-Rich) 등 원가를 대폭 낮춘 보급형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현지 완성차 라인업에 탑재시키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가속화해야 한다. 제품 라인업 다변화를 통해 중국이 주도하는 LFP 배터리에 맞서 가격과 성능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유럽 점유율 수성의 핵심이다.
이번 중동발 '기름값 쇼크'가 얼어붙었던 유럽의 소비 심리를 녹이고, K-배터리의 현지 가동률 턴어라운드 시점을 앞당길 강력한 촉매제가 될지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유가 급등이 유럽 소비자들의 꺾였던 전기차 구매 심리를 다시 자극하고 있는 것은 밸류체인 전반에 분명한 호재"라며 "다만 과거의 맹목적인 프리미엄 선호가 아닌 철저한 '비용 절감' 중심의 수요 반등인 만큼, 중국에 맞서 미드니켈 등 보급형 배터리의 양산 시점을 얼마나 앞당겨 현지 완성차에 적기 공급하느냐가 올해 하반기 실적을 가를 핵심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