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로 글로벌 해운 시장의 불확실성이 구조화되면서 국내 해운업계가 사업 전략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항로 봉쇄와 분쟁 여파로 급등했던 운임이 최근 들어 다소 조정을 받는 가운데 해운사들은 컨테이너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벌크와 에너지까지 아우르는 ‘올라운더 전략’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HMM의 5만톤급 중형 유조선(MR탱커) ‘오리엔탈 아쿠아마린(Oriental Aquamarine)’호./사진=HMM 제공
2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운 운임이 2주 연속 하락한 가운데 금주 상하이 컨테이너지수(SCFI)는 1875.26으로 전주 대비 11.28포인트 떨어졌다.
또한 미주 노선은 동안 3570달러, 서안 2586달러로 소폭 하락하며 보합 흐름을 보였고 유럽(1497달러)보다 지중해(2420달러)에서 낙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중동 노선 역시 3951달러로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중동 전쟁으로 한때 SCFI가 2000선에 근접한 것과 비교하면 리스크 완화에 따른 ‘전쟁 프리미엄’ 일부 해소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정상화’로 바라보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중동 지역 긴장 완화 이후에도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는 우회 항로 운항이 지속되고 있으며, 선박 보험료 상승과 항만 혼잡, 친환경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인 변수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운사들은 단기적인 비용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처럼 특정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화물과 노선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서고 있다.
◆확장·강화…해운사 ‘올라운더 전략’ 본격화
대표적으로 HMM은 앞서 컨테이너 중심 사업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벌크와 에너지 영역으로 확장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 기반을 마련해왔다.
최근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Vale)와 체결한 약 4300억 원 규모의 장기 철광석 운송 계약 역시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변동성이 큰 컨테이너 운임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평가된다.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다각화 전략이 더욱 강화되며 불확실성 대응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더해 BGN 그룹의 자회사인 B-인터내셔널 해운물류와 설립한 합작 투자법인의 경우 내년 1월 8만8000m³ 용량의 신조 VLGC 두 척을 인도받게 될 예정이다. 이 선박들은 10년 계약 하에 운항되며 추가 5년 연장 옵션이 있어 향후 LPG 운송 시장에서 HMM의 입지를 다지는데 기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팬오션의 경우 기존 벌크 중심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존부터 철광석·곡물·석탄 등 원자재 운송 기반의 장기 계약 비중이 높아 컨테이너 운임 변동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SK해운 탱커 사업을 약 6억6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초대형 유조선(VLCC)과 원유 운송 계약을 동시에 확보했다. 단순 선박 확보를 넘어 장기 계약 기반의 수익 구조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러한 장기 계약 중심 구조 기반 역시 불확실성 확대 국면에서는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장기계약은 운영 비용에 대해 고정 마진을 포함하게 되어 있어 시장 변동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투자자서비스(KIS)에 따르면 팬오션의 경우 호르무즈 해협 직접 노출은 약 1.7% 수준에 그쳐 물리적 리스크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해운사들이 특정 지역 리스크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을 낮추고 선대 운영을 분산해온 전략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운사들이 선대 운영 분산, 장기 계약 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을 통해 복합적인 리스크 대응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순히 특정 리스크를 회피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만드는 방향으로 전략이 전환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운송 계약은 연료비 등 변동 비용을 운임에 반영하고 해운사는 일정 수준의 마진을 확보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며 “시황 변동이나 외부 변수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