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태민 기자]정부가 상호시장 개방 이후 보호구간 처리 방향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면서 전문·종합건설업계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올해 말 4억3000만 원 미만 전문공사 보호구간 일몰을 앞두고 양 업계가 정면 충돌하는 가운데, 경쟁 촉진을 내세워 제도를 도입한 정부가 시장 영향과 영세업체 보호 범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상호시장 개방 이후 보호구간 처리 방향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면서 전문·종합건설업계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5일 업계에 따르면 종합·전문건설업 간 상호시장 진출 허용은 지난 2021년 건설산업 생산체계 개편을 계기로 본격 도입됐다. 정부는 업역 간 칸막이를 낮춰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종합건설업체의 전문공사 원도급과 전문건설업체의 종합공사 원도급을 단계적으로 허용해왔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시장에서는 경쟁 촉진보다 수주 불균형 논란이 먼저 부각됐다. 전문건설업계는 종합건설업체의 전문공사 시장 진입이 확대되며 지역 중소 전문업체의 주력 시장이 흔들렸다고 주장한다. 반면 종합건설업계는 전문공사 일부 구간에 대한 진입 제한이 상호시장 개방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갈등이 다시 커진 직접적 배경은 보호구간 일몰이다. 현재 종합건설업체는 공사예정금액 4억3000만 원 미만 전문공사를 원도급받을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해당 조치는 2026년 12월 31일까지 한시 적용된다.
보호구간은 상호시장 개방 과정에서 소규모 전문공사 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안전판 성격으로 운영돼왔다. 그러나 일몰 시점이 다가온 지금까지도 정부는 이 구간을 유지할지, 확대할지, 예정대로 종료할지에 대한 방향을 뚜렷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충돌이 보호구간 존폐 논쟁으로 되풀이되는 배경이다.
전문업계가 문제 삼는 부분은 제도가 대등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합건설업체는 전문공사 시장에 비교적 쉽게 진입한 반면, 전문건설업체는 종합공사 참여 과정에서 등록기준과 직접시공 요건, 추가 면허 부담 등을 충족해야 해 체감상 진입 장벽이 더 높았다는 주장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공공공사 상호시장 진출 규모 약 2조800억 원 가운데 종합건설업체가 수주한 전문공사는 약 1조6100억 원이었다. 반면 전문건설업체가 수주한 종합공사는 약 4600억 원 수준에 그쳤다.
해당 수치는 보호구간을 둘러싼 핵심 판단 쟁점으로 꼽힌다. 이 격차를 제도 시행 초기의 일시적 현상으로 볼지, 상호시장 개방 구조에서 발생한 불균형으로 볼지에 따라 보호구간 처리 방향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명확한 평가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양측은 같은 수치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갈등은 탄원전으로 번졌다. 대한전문건설협회와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보호구간 확대와 일몰 폐지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전문업계는 보호구간을 현행 4억3000만 원 미만에서 10억 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일몰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도 국토교통부에 ‘종합건설업계 생존권 수호’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하고 상호시장 개방이 예정대로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종합업계는 종합건설업체 역시 대부분 중소업체인 만큼 보호구간 확대가 중소 종합건설업체의 일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양측 모두 생존권을 내세우고 있지만, 충돌의 배경에는 정부의 사후 관리 부재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구간이 한시 장치였다면 일몰 전 시장 영향 평가와 조정 원칙이 제시됐어야 하지만, 판단이 늦어지면서 업계가 탄원과 여론전으로 맞서는 구도가 됐다는 것이다.
갈등은 국회 입법 논쟁으로도 옮겨갔다. 지난 4월 발의된 건설산업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전문공사 보호구간을 현행 4억3000만 원 미만에서 10억 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올해 말 종료 예정인 일몰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업계는 법안 발의가 그동안 제도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불균형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본다. 반대로 종합업계는 상호시장 개방 기조의 후퇴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 조정이 늦어지는 사이 쟁점이 국회 입법 논쟁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국토교통부도 상호시장 진출제도 영향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보호구간 일몰이 다가온 시점까지도 뚜렷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조정 방향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수년이 지난 만큼, 정부가 경쟁 촉진 효과와 영세업체 보호 필요성을 함께 따져 조정 방향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상호시장 개방은 정부가 추진한 정책인 만큼 시행 이후 나타난 수주 불균형과 영세업체 영향도 정부가 기준을 세워 정리해야 한다”며 “검토와 논의만 이어지는 사이 업계는 보호 연장과 완전 개방을 두고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