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태민 기자]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건설사들이 가장 우려해온 '하청 임금 협상의 원청 확산' 문제가 한고비를 넘겼다. 원청의 책임 범위를 따진 첫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서 임금은 원청이 교섭에 나서야 할 사안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안전 문제에는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면서 향후 교섭 범위를 둘러싼 불씨는 남았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첫 중노위 재심 판단에서 임금 직불제는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반면 산업안전 의제는 인정되면서 건설업계가 후속 판단을 주시하고 있다.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중노위는 최근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이 중흥건설·중흥토건을 상대로 낸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재심'에서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의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원청의 공고 의무를 인정했다. 지난 3월 10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시행 이후 원청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를 가린 노동위의 첫 재심 판단이다.
중노위는 의제별로 판단을 갈랐다. 산업안전(작업환경 포함) 의제에 대해서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등 하청이 단독으로 유해·위험요인 제거나 안전설비 설치·해체 같은 구조적 개선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원청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사용자로 인정했다. 노조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사실상 원청의 관리 아래 작업하는 만큼 원청이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노조가 함께 요구한 '원청의 임금 직불제'에 대해서는 노사 자율교섭은 가능하더라도 원청이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노위는 사용자성 인정 근거를 담은 결정서를 판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보낼 예정이다. 중흥 측이 결과에 불복하면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 '공사비 전가' 직접 부담은 피해
건설사들이 노란봉투법에서 가장 민감하게 본 지점은 임금이다. 하청 단위에 머물던 임금 협상이 원청으로 확산되면 인건비 상승이 공사비로 전가되고, 정비사업에서는 조합원 분담금 증가와 입주 지연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공사비 급등과 금융비용으로 사업성이 눌린 상황이라 노무 부담이 더해지는 데 대한 경계심이 적지 않았다.
이번 판단으로 건설사들은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는 분위기다. 임금 의제까지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현장별 하청 노조의 임금 요구가 원청으로 직접 향할 수 있었지만, 첫 재심 판단에서 해당 의제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분양가와 정비사업 분담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접 부담이 당장 확대되는 상황은 비켜간 셈이다.
이 같은 우려의 배경에는 최근 타워크레인 파업도 자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양대 노총 타워크레인 노조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해 전국 타워크레인 2100여 대가 멈췄고, 파업은 나흘 만인 31일 임금 총액 8% 인상 잠정합의로 일단락됐다.
파업이 길어지면 공기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과 인건비·금융비용 부담이 시공사로 돌아오는 반면, 노사 당사자는 노조와 임대업체여서 원청은 정작 교섭 테이블에 앉지 못하는 구조였다. 직접 교섭 주체가 아니면서도 공정 차질과 비용을 함께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사들이 임금 의제 확대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임금은 비켜갔지만…산업안전·후속 판단은 '변수'
이번 판단으로 노란봉투법 리스크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임금은 비켜갔지만 산업안전 의제에서는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원청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현장 안전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데, 하청 노조와의 교섭 의무까지 더해지면 안전을 매개로 한 교섭 요구가 늘어날 수 있다.
건설현장에서 산업안전은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설비 설치·해체, 위험요인 관리 등 현장 운영 전반과 맞물려 있다. 단순한 근로조건 논의를 넘어 작업 방식과 공정 관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건설사들은 후속 판단의 범위와 기준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판단이 사업장마다 엇갈리는 점도 부담이다. 노조는 3월 중흥 등 93개 원청 건설사에 교섭을 요구했다. 이 중 지노위에서 인용된 극동건설 건과 이번 중흥 건을 빼고 90여 건은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취하됐다. 건설은 다단계 도급이 기본이어서 철근·콘크리트 등 다른 공종 하청 노조로 교섭 요구가 번질 여지도 있다. 같은 법을 두고도 사업장·의제·공종별로 결론이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 노무비 산정 기준 상향 논의도 겹치고 있다. 정부는 타워크레인 파업을 매듭지으면서 노조가 요구해온 표준시장단가와 표준품셈 현실화, 발주자 직접지급제 확대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인건비 반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사안들이어서, 사용자성 확대 논의와 맞물릴 경우 공사비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임금까지 원청이 떠안는 상황은 일단 피했지만, 산업안전을 고리로 한 교섭 요구가 다른 현장과 공종으로 번질 수 있다"며 "여기에 인건비 기준까지 오르면 노무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