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과 이란이 60일 내 최종 종전 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에 합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운영 선박이 통항을 재개하며 정유업계의 원유 수급 안정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중동 정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원유 수송 리스크 해소 여부가 하반기 정유사 실적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원유 수송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해상 물류 정상화의 초기 신호가 포착됐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한국 선사가 운영하는 선박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선박들은 정상적으로 항해 중이며 물류 병목 현상이 해소되는 첫 단추를 뗐다는 평가다.
미국과 이란이 60일 내 최종 종전 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에 합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울산산업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중동 원유 의존도 60~70%…VLCC 운임·보험료 하락에 밸류체인 안정화
국내 정유업계(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이번 통항 재개 소식을 반기며 향후 물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정유사들이 도입하는 원유의 60~70% 이상이 거쳐야하는 공급망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등 중동의 핵심 산유국에서 생산되는 원유 상당량이 이 해협을 통과해 국내 정제 설비로 입고되는 구조다. 그간 중동발 분쟁으로 해협 통항 차질 우려가 고조될 때마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 수급 불안과 비용 폭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왔다.
즉각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부문은 원유 조달 과정에서의 비용 절감이다. 해협 전면 봉쇄 우려가 걷히고 통항이 정상화 궤도에 오르면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붙었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글로벌 해상 운임과 전쟁 보험료 등 부대비용이 하락하게 된다.
원유를 들여오는 배편과 보험 비용이 줄어들면 정유사의 핵심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특히 최근처럼 고환율·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환경에서 달러로 전액 결제해야 하는 해상 물류 비용의 감소는 하반기 영업이익 개선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원가 안정화는 석유화학 및 수출 시장으로도 이어진다. 정유 공정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석유화학 부문의 원료 조달 리스크가 낮아진다. 동시에 공급망 교란 탓에 멈춰 섰던 아시아 및 글로벌 시장 석유제품 수출선 확보와 운임 경쟁력도 동반 회복될 수 있다. 리스크 헤지를 위해 무리하게 원유 비축량을 늘려야 했던 잉여 자본 부담을 덜어내고 포트폴리오 고도화나 친환경 에너지로의 구조 전환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까지 생기는 셈이다.
◆ 통항 첫발 뗐지만 '60일 본협상' 이스라엘 변수 여전
다만 물류 구조가 완전히 해빙 무드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는 한국 선사가 운영하는 선박 총 22척의 발이 여전히 묶여 있는 과도기적 상태다. 이번에 통과한 2척의 선박 외에 대기 중인 잔여 선박들이 안전하게 해협을 빠져나와 정상 항로를 확보하기까지는 여전히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앞으로 60일간 펼쳐질 미국과 이란의 본협상 여정도 첩첩산중이란 진단이 지배적이다. 스위스에서 18시간의 마라톤 격론 끝에 종료된 1차 고위급 회담에서 미·이란 양측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 통항 보장과 레바논 분쟁 관리 체계 구축이라는 큰 틀의 로드맵 도출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중동 이해관계자들의 내부 권력 구도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어 언제든 판이 뒤집힐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60일 로드맵 합의로 최악의 호르무즈 전면 봉쇄라는 파국은 면했지만, 이스라엘의 군사적 돌출 행동이나 미·이란 본협상의 상황에 따라 해상 운임 지표는 언제든 다시 요동칠 수 있다"며 "중동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 전략을 유지하는 한편 하반기 실적을 좌우할 글로벌 정제마진과 유가 추이를 분기별로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