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고환율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 원가 부담이 가중되자 식품업계가 결국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요 식품기업들은 핵심 원재료 가격이 평년 수준을 웃돌고 있고, 올해 초부터 중동 전쟁 여파까지 더해져 비용 내재화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간 정부가 가격 통제 고삐를 강하게 죄었던 만큼, 억눌렸던 식품·외식업 전반에서 연쇄적인 '가격 인상 도미노'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매대에 진열된 음료 제품들./사진=미디어펜 김성준 기자
2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오는 26일부터 12개 브랜드 44개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한다. 주요 인상 품목은 칠성사이다(4.3%), 밀키스(6%), 칸타타(5.7%), 핫식스(4%), 펩시콜라(5%), 마운틴듀(6.1%), 게토레이(6.3%) 등이다. 롯데칠성음료가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은 지난 2024년 6월 이후 2년 만이다.
롯데칠성음료는 가격 인상 배경으로 알루미늄과 나프타 등 주요 포장재 원재료 가격 급등을 꼽았다. 음료 포장재 대다수는 알루미늄 캔과 나프타로 만든 플라스틱으로, 대부분 해외에서 조달된다. 국제 알루미늄 가격은 미국 정부의 관세 영향과 올해 중동 전쟁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여파로 지난해 5월 톤당 2440달러에서 올해 5월 3670달러 선까지 50%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제 나프타 시세 역시 톤단 568.6달러에서 957.7달러로 68% 뛰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다른 식품업계와 달리 포장재가 전체 원재료비의 약 50%를 차지하는 음료 산업 특성상 포장재의 원재료비 상승이 이번 가격 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환율 상승으로 인해 미국 펩시사 제품 생산을 위한 원액 등 수입 비용 증가와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류비 증가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음료 외에도 주요 식품기업들은 포장재 비용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캔을 주요 제품 포장재로 사용하는 하이트진로의 경우, 최근 공캔 납품업체와 공급가 인상 협의를 진행 중이다. 농심과 삼양식품 등 라면·과자 제조 기업들도 비닐 포장재로 원가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다.
외식업계에서도 가격 인상 움직임이 촉발됐다. 동대문엽기떡볶이 운영사 핫시즈너는 내년 7월부터 전 제품 판매가격을 약 7% 인상하기로 했다. 앞서 더본코리아는 11개 외식 브랜드 일부 메뉴 가격을 평균 11% 올렸으며, 롯데리아도 메뉴 22종 가격을 평균 2.9% 인상했다. 메가MGC커피는 할메가커피 제품군 3종 가격을 각각 200원씩 인상했고, 이디야커피와 커피빈은 스틱커피 가격을 각각 최대 15.2%, 8.1% 올렸다.
업계에서는 원가 인상 요인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5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30.8으로, 전년동기대비 6.3% 증가했다. 곡물 가격 지수는 114.3으로 4.9%, 유지류 가격은 21.6% 증가했다. 고공행진하는 환율도 비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날 15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536.20원으로, 지난해 6월 평균 환율 1366.28원 대비 12.4% 높은 수준이다. 주요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큰 식품산업 특성 상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수입 가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기업 가격 인상을 억눌러왔던 정책 기조가 반작용을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간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수익성 악화를 감내해왔던 만큼, 가격 조정 결정시 인상폭을 더 크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정부가 여전히 가격 인상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주요 식품 제조사들은 가격 인상 카드를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환율 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은 맞지만, 기업이 정부와 소통 없이 마음대로 가격 인상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이전엔 1위 업체가 소위 '총대'를 메면 다른 기업들이 따라 나섰지만, 지금은 업계 전반에 가격 인상을 원하는 눈치가 팽배한데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