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과감한 예술적 모험이자 자본의 시험대로 꼽히는 ‘SF’ 장르의 두 기대작이 올여름 극장가에서 흥미로운 정면승부를 벌인다. 한국형 SF라는 공통된 분모를 지향하면서도, 프로덕션의 규모와 자본의 경제학,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연출 문법에서 완전히 극단에 서 있는 두 작품이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나홍진 감독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호프(HOPE)'와 박세영 감독의 독창적인 독립 SF '지느러미'가 그 주인공이다. 두 작품은 불과 일주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연이어 개봉하며 올여름 극장가를 장르적 열기로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한국형 SF라는 같은 장르를 지향하지만, 규모에서는 비교도 안되는 차이를 보이는 영화 '호프'(왼쪽)와 '지느러미'가 같은 시기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줄 예정이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주)에무필름즈 제공
먼저 포문을 여는 쪽은 오는 15일 개봉을 확정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다. 이 작품은 순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 등을 포함해 총제작비만 500억 원이 넘는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메가 프로젝트로, 기획 단계부터 한국 영화계의 '규모의 경제'를 대변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등 국내 최정상급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진이 전면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까지 전격 가세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라인업을 완성했다.
외딴 항구마을이라는 폐쇄적 공간에 미지의 존재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절박한 사투를 그린 이 작품은 단순히 자본의 규모에만 기대지 않는다. 앞서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을 당시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를 건드리는 압도적인 서스펜스와 시각적 경이로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는 세계 평단의 극찬을 한 몸에 받았다. 상업적 쾌감은 물론 장르물로서의 깊이 있는 작품성까지 충분히 평가받으며 올여름 가장 강력한 흥행 주자로 꼽히고 있다.
5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든 것으로 알려진 '호프'는 자본의 힘뿐 아니라 칸을 매료시켰을 만큼의 작품 완성도도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에 맞서 정확히 일주일 뒤인 22일 개봉하는 '지느러미'는 전형적인 독립영화의 규모와 저예산 시스템 속에서 탄생했지만, 그 내실과 예술적 성취 면에서는 대작 못지않은 단단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수작이다. 지난 2024년 독특한 크리처물인 '다섯 번째 흉추'로 국내외 평단과 시네필들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던 박세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이 작품은, 환경 재앙을 맞닥뜨린 근미래의 통일 한국이라는 독창적이면서도 쓸쓸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무대 위에 올렸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이루어졌으나 심각한 환경 오염으로 물과 공기가 메말라 버린 한반도를 배경으로, 유전자 변이로 인해 지느러미를 달고 태어난 돌연변이 존재인 ‘오메가’들의 처절한 사투를 담아냈다. 인간들에게 철저히 격리된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오메가들이 인간인 척 숨어 살기 위해 발가락을 자르고 구역을 이탈하는 플롯은,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소외와 차별, 그리고 혐오라는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관객의 목전으로 날카롭게 던진다.
'지느러미' 역시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현재의 감독’ 부문에 초청된 것을 비롯해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되며 해외에서 먼저 그 압도적인 작품성과 작가주의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박세영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세피아 톤의 무거운 빛과 거친 질감으로 채워낸 독보적인 미장센은 자본의 크기를 비웃듯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아우라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지느러미'는 이미 세계 35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확실한 작품성을 자랑한다. /사진=(주)에무필름즈 제공
이처럼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극장에 걸리는 두 작품의 연이은 만남은, 관객들에게 극과 극의 형태로 구현된 한국형 SF 판타지의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 500억 원이라는 거대 자본과 글로벌 기술력의 총체로 장르적 서스펜스와 시각적 스펙터클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호프'가 멀티플렉스 극장가의 메인 스트림을 장악하며 대중적 흥행을 정조준한다.
반면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날 것 그대로의 예술적 실험 정신을 담은 '지느러미'는 한국 SF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술적 지평을 제시하며 극장가에 묵직한 변주를 줄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대작의 웅장함과, 세계 무대가 먼저 알아본 독립영화 수작의 날카로운 작가 정신이 한 주 간격 개봉으로 맞대결을 벌인다. 올여름 한국 영화계의 다채로운 장르적 스펙트럼과 질적 성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표가 될 전망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