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근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계기 한미일 3국이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협력각서(MOC)를 체결한 것과 관련해 중국·러시아의 세계 원자력시장 장악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MOC 체결은 미국 국무부 제안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은 작년 상반기부터 SMR 협력 논의를 시작해 올해 상반기에 MOC 문안에 합의했으며, 이번 나토 정상회의 계기 3국 외교장관이 서명식을 개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취재진을 만나 “이번 MOC의 기본 목적은 한미일 원전 업계가 인도태평양(인태) 지역을 시작으로 글로벌 SMR 시장에 공동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일의 역량이 결합된다면 인태 국가들에게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협력각서 체결 이후 여러 외교채널을 통해 이를 환영하는 반응도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당국자는 “이번 MOC는 정부 차원에서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기존에 각국이나 기업들이 추진 중인 민간 원자력 사업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국내법·국제법적 의무를 창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SMR은 300MW(메가와트)급 이하의 소형 원전이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건설에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2050년 전세계 원전 수요의 30%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올해 SMR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미국은 2030년 첫 상용 가동을 추진 중이다.
(오른쪽부터) 조현 외교부 장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대신이 7일 튀르키예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 계기에 한미일 외교장관회의를 열고 있다. 2026.7.8./사진=외교부 제공
미국이 한국, 일본과 SMR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중국·러시아의 원자력 에너지 공급망 장악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현재 원전 수출시장의 90%를 러시아가 차지한 가운데, 중국 역시 현 시점에서 전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 80기 중 39기를 맡으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SMR 설계분야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1979년 스리마일 사고 이후 원전 시공을 중단한 상태다. 일본 역시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 공급망 자체가 위축된 상황이다. 한국은 1970년대 후반 고리 1호기 건설 이후 원전 시공 역량을 지속 축적해왔고 납기와 예산을 지키는 데 정평이 나 있다.
물론 한국의 SMR 분야 기술력 자체는 미국 등과는 다소 격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뛰어난 시공 능력으로 한미일 3국이 힘을 합쳐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시너지를 내서 중국과 러시아에 원전 시장 장악에 대응하려는 것이 이번 MOC 체결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번 한미일의 SMR 협력이 앞으로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진영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커졌다. 한미일 MOC에는 “인태 지역은 앞으로 신규 원전 수요가 가장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 한미일의 역량이 결합된다면 역내 국가들에게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즉 인태 지역에서 한미일과 우호적인 국가가 주요 수요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자연스럽게 중·러와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은 보통 설계부터 시공, 운영을 거쳐 나중에 퇴로 해체 및 연료 조달까지 계약을 맺은 국가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동맹국이나 우호국이 아니면 쉽게 계약을 체결하기 어렵다.
한편, 이번 협력이 한미 간 안보 협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양국 정상간 합의에 따라 한국의 민간용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재처리 권한 확보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동안 한국은 2015년 개정한 한미 원자력협정 등에 근거해 우라늄 농축 등을 제한받아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예전엔 미국이 한국을 핵 비확산 측면에서 허가와 규제의 대상으로 봤다면 이젠 공급망,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필요한 동맹국이자 동등한 파트너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