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정부가 비대면진료로 처방받은 의약품의 배송 대상을 모든 환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제약업계가 제도 변화에 따른 파급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아직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 논의 단계지만, 실제 제도화될 경우 제약사의 유통망 재편과 비대면진료 사업 확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 일대에 위치한 약국 전경. /사진=미디어펜
24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중소벤처기업부·국무조정실은 오는 12월 24일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의약품 재택수령 대상을 현행 의료 취약계층에서 전체 비대면진료 환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비대면진료 이용자의 의약품 수령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약국 재고정보 제공 체계를 고도화하고, 의약품 유통시장 전반의 제도적 기반을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약 배송 대상 확대를 위해서는 약사법과 의료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해 실제 시행 여부와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대형 제약사 유통 재편에 영향…중소사는 부담 가능성
약 배송 확대가 실제 제도화될 경우 제약업계에서는 의약품 유통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대형 제약사들이 도매업체 중심의 기존 유통망을 효율화하고 공급망에 대한 관리력을 높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웅제약의 '블록형 거점도매'가 꼽힌다. 대웅제약은 전국을 권역별로 구분하고 소수의 거점 도매업체를 중심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유통 구조를 재편했다. 이를 통해 배송 효율을 높이고 재고 및 반품 관리 등을 일원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제약사 주도의 유통망 재편은 약 배송 제도화와 맞물릴 경우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비대면진료 이후 처방·조제·배송까지 연결되는 시장이 확대되면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물류망과 재고관리 역량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어서다. 상위 제약사들이 권역별 전담 유통망과 병·의원·약국 대상 온라인몰 등을 강화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다만 제도 변화가 제약사별로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특히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중소 제약사의 경우 유통업체가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되면 거래처 확보와 제품 노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유통업체 수가 줄어들면서 제약사 간 공급 경쟁이 심화될 경우 영업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업체가 불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비대면진료 사업 확장 기회…플랫폼 종속은 변수
일동제약 종합 헬스케어 플랫폼 새오엠에스의 비대면 진료 키오스크 새로닥터./사진=일동제약
비대면진료 관련 사업을 추진해온 제약사들은 약 배송 확대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동제약, GC녹십자, 한독 등은 비대면진료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진출하며 온라인 의료 서비스와의 접점을 확대해왔다.
현재 비대면진료를 통해 처방을 받더라도 의약품 수령 과정에서 환자가 직접 약국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약 배송이 전체 비대면진료 환자로 확대되면 진료부터 처방, 조제, 의약품 수령까지 비대면으로 연결되는 서비스가 가능해져 관련 플랫폼과 전자처방 시스템의 활용도도 높아질 수 있다.
정부가 약국별 의약품 재고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를 함께 마련하려는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환자가 비대면진료를 받은 뒤 가까운 약국의 재고를 확인하고 조제 가능한 약국을 선택해 배송받는 구조가 정착되면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플랫폼 영향력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약국별 배송 건수와 이용자 평가 등이 플랫폼 내 노출 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약국과 제약사의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이 자체 온라인몰이나 유통망을 강화하는 움직임과 플랫폼 기반 배송망이 향후 경쟁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를 고려해 배송 주체와 안전관리 기준을 함께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원거리 비대면진료 전담 약국을 배제하고 환자와 가까운 동네약국을 중심으로 배송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조제약 품질관리와 환자의 실제 수령 여부 확인, 비대면 복약지도 기준 등도 논의 대상이다.
다만 대한약사회를 비롯한 약사사회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어서 제도화 과정에서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전체 환자로 약 배송 대상을 확대하려면 관련 법률 개정이라는 국회 절차도 거쳐야 하는 만큼, 향후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국회 논의 결과에 따라 제약업계의 대응 전략도 달라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약 배송 확대가 논의되는 단계인 만큼 제약사들도 구체적인 투자보다는 유통 구조 변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며 "실제 제도화된다면 대형사는 물류와 유통 경쟁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중소 제약사는 거래처와 플랫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