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국내 해상풍력 정책이 사업자 중심의 개별 개발 방식에서 정부가 입지를 먼저 발굴하고 사업자를 선정하는 ‘계획입지’ 방식으로 전환된다.
해상풍력 보급 확대가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직접 입지와 인허가, 주민수용성 문제에 대응해 사업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태안군 해상풍력 집적화단지 사업 예정지 위치./자료=기후부
정부는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회 해상풍력발전위원회를 열고 ‘해상풍력 주요 추진성과 및 계획입지 도입 방안’을 첫 심의·의결했다.
해상풍력발전위원회는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된 범정부 기구로, 예비지구와 발전지구 지정, 사업자 선정, 실시계획 승인 등 해상풍력 보급과 관련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이번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해상풍력의 ‘허가와 실제 보급 사이의 큰 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해상풍력 누적 허가 물량은 약 33GW에 달하지만 실제 보급량은 0.37GW에 불과하다. 인허가 지연과 항만·선박 등 인프라 준비 부족, 주민 및 어업인 수용성 문제가 사업 추진을 가로막은 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정부가 꺼내든 해법은 입지 선정 단계부터 정부가 개입하는 계획입지다. 기존에는 개별사업자가 직접 바다를 조사해 입지를 발굴하고 주민 협의와 각종 인허가를 진행해야 했다.
앞으로는 정부가 풍황은 물론 환경·어업활동·해상교통·군사작전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적합한 지역을 선제적으로 발굴한다. 이후 지방정부와 함께 주민 수용성을 확보한 뒤 사업자를 선정한다.
목표는 2031년까지 25GW 규모의 예비지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는 2026년과 2027년 각각 2.5GW, 2028년부터 2031년까지 매년 5GW의 예비지구를 지정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예비지구 가운데 약 80%는 3년 후 발전지구 경쟁입찰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약 20GW의 추가 보급 물량을 확보하고, 2040년까지 누적 45GW의 해상풍력 보급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보급 목표도 단계적으로 제시됐다. 정부는 2030년 해상풍력 10.5GW의 준·착공을 시작으로 2035년 25GW 보급, 2040년 45GW 누적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내 첫 예비지구 지정도 추진한다. 후보구역에 대한 관계부처 협의와 평가를 거쳐 올해 12월께 해상풍력발전위원회 의결을 통해 약 2~3GW 규모의 첫 예비지구를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비용 절감 역시 계획입지의 중요한 축으로, 정부는 입지 선정 단계부터 관계부처와 주요 인허가 사항을 사전 검토하고, 사업자 선정 이후에는 해상풍력법에 따라 관련 인허가를 일괄 처리해 사업 기간과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계획입지에서는 28개 법률, 42개 인허가를 원스톱 방식으로 집중 처리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발전단가를 낮추기 위한 목표도 구체적이다. 정부는 2030년 발전단가를 kWh당 250원 수준으로 낮추고, 2035년에는 보조금 없는 전원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연간 4GW 규모의 해상풍력 보급이 가능한 항만·선박 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간 4GW 이상 물량을 대상으로 10년 단위 경쟁입찰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계획입지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는 결국 ‘수용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주민과 어업인이 사업 초기부터 참여하도록 하고, 주민 이익공유와 어민 상생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협의가 조기에 완료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해상풍력을 에너지 대전환을 뒷받침하는 핵심 청정전원이자 반도체·AIDC·피지컬 AI 등 대규모 전력 수요를 충당할 전원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조선·철강·케이블 등 연관 산업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이번 계획입지 도입은 해상풍력을 얼마나 많이 허가할 것인가보다 ‘허가된 사업을 실제 발전소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33GW의 허가 물량이 0.37GW의 실제 보급에 그친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 주도의 입지 선정과 인허가 간소화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2030년 10.5GW 준·착공, 2035년 25GW 보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민·어업인 수용성 확보와 함께 항만·선박, 전력계통 등 관련 인프라 구축까지 계획대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