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투자는 자유, 실행은 교섭?”… 노동부 지침에 발목 잡힌 호남 메가프로젝트

입력 2026-09-03 17:02:55 | 수정 2026-09-03 17:02:55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동쟁의 대상 범위를 둘러싼 현장의 혼선이 커지는 가운데, 신규 투자에 따른 인력 재배치마저 쟁의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광주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 국가 핵심 투자 사업이 지연 위기에 처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시행지침안이 공장 신설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인력운영계획이 '구체화'되면 배치전환이 교섭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산업 현장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투자는 초기 수율 확보와 숙련 인력 배치가 필수적인데, 계획을 세우는 순간 쟁의 리스크에 직면하는 역설적 구조가 만들어진 탓이다.

◆ '구조조정'과 다른 '신규투자 재배치'… 쟁의 대상서 제외해야

신규 투자에 따른 인력 배치는 일자리를 줄이는 구조조정과 성격이 명백히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신규 공장 설립과 같은 고도의 경영상 결정은 노동쟁의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며, 노동계가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교섭 의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AI·반도체 대전환 시대의 기술패권 경쟁은 결국 "인재를 얼마나 신속하고 유연하게 투입할 수 있는지의 싸움"이라며, 공장 신설 등 고도의 경영상 결정이 노사 갈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계와 법조계 역시 일자리를 없애는 '구조조정형'과 일자리를 만드는 '유지·확장형' 배치전환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조합원이 84%에 달한다며 관련 사안을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혀 국가 전략 투자가 노조 동의 여부에 좌우되는 상황이다.

◆ 지침의 역설… 인력계획 구체화하면 쟁의 대상 되는 모순

지침안의 가장 큰 맹점은 투자 실행을 가로막는 문언 구조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문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서 인력 재배치는 "투자의 부수 업무가 아니라 곧 투자 실행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인력운영계획을 수립·공지하는 순간 지침안의 문언상 배치전환이 교섭·쟁의 대상으로 전환돼 '투자는 자유롭게 하되 실행은 노조와 교섭하라'는 모순이 생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사업의 투자결정을 배치전환 반대를 위한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노조에 사실상 '투자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배치전환의 정당성은 근로기준법상 이미 사후적 사법 통제를 받고 있어, 쟁의 절차까지 더해지면 과도한 규제 중복이라는 지적이다.

◆ "행정지침 한계 명확… 시행령에 명문화해야"

전문가들은 행정지침 수준의 대응으로는 사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김덕호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가 추가 지침 등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법률의 모호성을 하위규범으로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사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헌법상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전향적이고 결단력 있는 개정입법을 촉구했다. 

노동3권이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핵심 기본권이듯 경영권 역시 헌법 제15조와 제23조에 기초한 헌법적 권리인 만큼, 두 기본권이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는 '규범조화적 해석'이 법률 차원에서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노조법에 위임 근거를 두고, 시행령에 '신규투자·증설에 따른 배치전환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님'을 명문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조준모 교수는 △인력 이동의 목적이 고용 감축인지 신규 투자 실행인지 △임금 삭감·해고·과도한 원거리 전보 등 중대한 불이익이 있는지 △교섭의 범위가 투자와 배치에 대한 거부권이 아니라 불이익을 줄이는 보호조치인지의 세 가지 판단 기준을 제안했다. 

근무지 변경에 따른 주거·교통 지원 등 실질적 불이익은 두텁게 보호하되, 투자 실행 자체는 경영권으로 보장하자는 취지다.

김덕호 교수는 공장 증설에 필요한 인력 이동이 노사분쟁으로 지연되면 그 타격이 연쇄적으로 번져 협력사의 투자와 채용도 미뤄지고, 가장 먼저 닫히는 문은 노동시장 밖에서 기다리는 청년의 취업문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일본이 파격적 지원으로 공장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반도체 속도전 속에서, 법적 불확실성 하나가 국가 전략 프로젝트의 시계를 늦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반도체 성공의 열쇠는 지원금 뿐만 아니라 기술과 자본, 그리고 사람이 제때 움직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