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배소현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럽에서 기업간거래(B2B) 사업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개별 가전을 판매하는 데서 나아가 냉난방공조(HVAC)와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함께 공급하고, 여러 제품과 설비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관리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가전부터 공조, 인공지능(AI) 기반 관리 기술까지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앞세워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하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6'에서 유통업체와 건설사 등 기업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한다. 올해 IFA에는 49개국에서 19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참가하며 중국 기업은 932곳으로 전체 참가사의 절반에 육박한다.
올해 양사의 전시 전략에서도 B2B 사업 확대 흐름이 두드러진다. LG전자는 3745㎡ 규모의 IFA 전시장 가운데 약 46%를 비즈니스 파트너 전용 상담공간으로 꾸렸다. 역대 최대 규모다. 신제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공간과 별도로 유럽 유통업체와 B2B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전시장 절반 가까이 배치했다.
삼성전자도 베를린 도심 컨벤션센터 '훔볼트 카레'에 별도 전시장을 마련해 주요 유통 파트너와 B2B 고객, 미디어 등을 만난다. 메세 베를린에서는 '크리에이터 허브'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해 별도 전시를 운영한다.
가전 사업이 제품 판매를 넘어 관리 영역까지 넓어지면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사업 기회도 더 많아지는 분위기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 한 대를 판매하는 것과 달리 호텔이나 주거단지, 오피스 등에서는 여러 대의 가전과 공조 설비를 공급하고 이를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필요하다. 가전업체가 보유한 제품군과 연결 플랫폼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인 셈이다.
◆ 호텔부터 주거단지까지… 기기·에너지 한꺼번에 관리
LG전자는 이번 IFA에서 B2B 통합 관리 솔루션 'LG 씽큐 프로'를 선보인다. 빌딩과 오피스 등에 설치된 가전과 HVAC, 에너지 설비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관리하는 서비스다. 여러 제품을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건물에 설치된 설비의 운영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LG전자는 가정에서 쓰던 에너지 관리 기술도 기업용으로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24년 인수한 스마트홈 플랫폼 기업 앳홈의 '호미'를 활용해 AI 가전과 HVAC,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동한 홈에너지관리시스템(HEMS)을 공개했다. 호미는 5만 개 이상의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연결할 수 있다. LG전자는 유럽에서 쌓은 호미의 사업 기반을 활용해 향후 다세대 주택 건설사 등에 관련 솔루션을 공급할 계획이다.
B2B 사업을 겨냥한 가전 제품군도 넓어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7월 대용량 상업용 세탁가전 'LG 프로페셔널'을 유럽에 출시했다. 호텔과 병원, 요양시설 등이 주요 고객이다. 제품 판매에 더해 상업용 세탁 관리 플랫폼 '런드리크루'를 통해 여러 세탁기의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하고 오류 알림과 스마트 진단 등을 제공한다. 유럽을 시작으로 아시아와 북미 등으로 판매 지역을 넓힐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제품 공급과 관리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B2B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AI 기반 B2B 솔루션 '스마트싱스 프로(SmartThings Pro)'는 건물에 설치된 기기를 연결해 상태와 에너지 사용량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가정에서 가전을 연결하던 스마트싱스의 활용 범위를 주거단지와 상업시설 등으로 넓히는 것이다.
실제 공조 사업에서는 유럽 B2B 공급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스페인 칼페의 호텔 에스메랄다에 대형 시스템에어컨 실외기와 천장형 무풍 에어컨을 공급했다.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의 한 대형 호텔에도 냉난방 솔루션을 공급했다. 역사적인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설치 공간과 외관 훼손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을 적용했다.
유럽 외에서도 사업 방식은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호찌민의 신도시 주거단지 약 3000세대에 무풍 에어컨을 공급하고 있으며 내년 인도 푸네의 프리미엄 주거단지와 대형 병원에는 천장형 에어컨 3000대와 실외기 600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특히 주거단지에는 스마트싱스 프로를 적용해 공조 제품의 통합 제어와 에너지 관리 환경을 구축한다.
◆ 중국 공세 속 넓어지는 경쟁판… 가전·공조·AI로 차별화
이 가운데 HVAC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B2B 사업을 넓히는 주요 분야 중 하나다. 호텔과 오피스, 주거단지 등에서는 생활가전뿐 아니라 냉난방과 에너지 관리까지 공급 범위를 넓힐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유럽 HVAC 업체 플랙트그룹 인수를 마무리하며 기존 가정·상업용 에어컨에서 중앙공조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난 3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공조 전시회 MCE 2026에서는 삼성전자의 시스템에어컨과 플랙트그룹의 공기조화기(AHU) 등을 함께 선보였다. 플랙트 제품과 삼성 실외기를 연결하고 건물관리시스템(BMS)과 AI를 활용해 에너지 사용을 관리하는 방식도 제시했다.
LG전자 역시 HVAC를 B2B 사업의 주된 축으로 키우고 있다. 가정용 에어컨부터 상업용 시스템에어컨과 히트펌프, 칠러까지 제품군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에는 냉난방과 에너지 설비를 씽큐 프로로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다만 유럽 시장을 향한 중국 가전업체들의 공세도 거세다. 올해 IFA에 참가 등록한 중국 기업은 932곳으로 지난해보다 약 200곳 늘었다. 하이센스와 TCL뿐 아니라 샤오미, 로보락, 에코백스, 드리미 등도 가전과 스마트홈, 로봇 분야에서 유럽 소비자 공략에 나선다.
중국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넘어 AI와 스마트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랜 기간 쌓아온 가전 경쟁력에 HVAC와 AI 플랫폼까지 더하며 제품군과 서비스를 함께 공급할 수 있는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B2B에서는 한 번의 공급이 추가 사업으로 이어질 여지도 크다. 주거단지나 호텔 등에 가전을 공급한 뒤 공조와 에너지 관리 시스템까지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고, 설치 이후에도 원격 관리와 유지보수 등 서비스 수요가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글로벌 가전 시장은 중국 업체들의 성장과 시장 성숙으로 개별 제품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사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이미 확보한 고객 접점과 사업 기반을 공조·에너지 관리까지 확장하면서 B2B에서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