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매년 300톤가량 소각되던 폐경찰제복이 가방과 지갑 같은 새활용 제품부터 의류·건축자재·자동차 내장재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올해 10년 만에 경찰복 디자인이 개편되면서 향후 2년간 경찰청 본청과 소속기관 직원 13만 명분의 폐제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가 본격적인 자원순환 체계 구축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9일 경찰청, 한국환경공단,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한국지속가능섬유의류연합, BYN블랙야크, 케이투세이프티코리아 등과 ‘경찰제복 순환이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공부문 단체복을 대상으로 새활용과 재활용을 연계한 순환체계를 구축하는 첫 시범사업이다.
이번 사업은 폐기물 감축과 함께 의류를 폐기 대상에서 다시 산업 원료로 전환하는 순환경제 모델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제복 순환이용 시범사업 흐름도./자료=기후부
일반 의류는 폴리에스터와 면 등 소재가 복잡하게 섞여 있고 지퍼·단추 등 부자재까지 포함돼 재활용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전 세계적으로 의류가 재활용되는 비율이 1% 미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단체복은 재질이 비교적 균일하고 대량으로 발생하며 수거체계도 명확해 재활용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경찰제복은 내구성이 높은 기능성 섬유로 만들어져 새활용뿐 아니라 물리적·화학적 재활용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핵심은 폐제복을 버리지 않고 소재별로 분해해 다시 산업 생산망에 투입하는 것이다. 우선 경찰제복 가운데 정복·근무복·기동복·점퍼·혹한기파카·형광조끼 등 6개 품목을 분리배출한다.
지방 파출소와 지구대에서 모인 제복은 경찰서와 각 시도경찰청을 거쳐 전처리업체나 비축창고로 운반된다. 전처리 과정에서는 명찰과 마크 등 보안요소를 제거하고 지퍼와 단추 같은 부자재를 분리한 뒤 품목별·소재별로 해체한다.
이후 소재의 특성에 따라 활용처가 달라진다. 상태가 양호한 제복은 에코백과 파우치 등 새활용 제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재활용이 가능한 섬유는 파쇄·절단·타면 과정을 거쳐 단섬유 형태로 회수한 뒤 실과 원단을 만들어 양말·셔츠 등 의류제품으로 재활용한다.
섬유 특성상 실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에는 솜 형태의 재료에 압력을 가해 건축자재나 가구 등으로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화학적 재활용이다. 혼방섬유에서 폴리에스터를 분자로 분해한 뒤 다시 연결해 폴리에스터 사슬로 합성하면 새로운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재생원료가 플라스틱 신재를 대체해 자원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제복의 수거부터 제품 생산까지 역할을 분담해 공급망 자체를 순환형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경찰청은 폐제복을 분리배출하고 운반하는 동시에 재활용 제품의 우선구매와 수요처 발굴에 나선다. 한국환경공단은 전처리업체로 즉시 운반하기 어려운 물량을 비축창고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 공급한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업체 간 물량을 배분하고 재활용량과 폐기량을 관리한다. 섬유의류업계는 전처리와 새활용·재활용 제품 생산을 맡고, 패션기업은 재생원료를 활용한 최종 의류 생산과 판매를 담당한다.
사업의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기후부는 폐경찰제복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운반과 재활용의 편의성을 높이고, 공공·민간 수요처를 추가로 발굴할 예정이다. 순환자원으로 인정되면 환경성·경제성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자원은 폐기물 관련 규제에서 제외될 수 있다.
정부가 경찰제복을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은 향후 다른 공공부문 단체복으로 확장하기 위한 실증 모델이라는 의미가 크다.
경찰청은 이번 사업에서 확보한 수거·전처리·재활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방복과 교복 등 다른 단체복으로 순환이용 모델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일반 의류 재활용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이번 협약을 공공부문 최초의 의류 순환이용 시범사업으로 규정하고, 경찰제복에서 시작된 의류 순환이용 체계를 여러 단체복과 일반 의류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공공기관이 폐기물 발생 단계부터 수거·전처리·재활용·제품 생산·판매까지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면서 ‘버리는 제복’에서 ‘다시 쓰는 산업자원’으로의 전환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