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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감독도 슬레이트에 손가락 끼던 시절 있었다"

입력 2026-10-15 12:06:16 | 수정 2026-10-15 12:06:16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세계적 명성을 지닌 거장 감독부터 천만 관객을 동원한 스타 감독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대표 감독 31인의 눈물겨운 무명 시절과 데뷔 과정을 담아낸 논픽션 에세이 '나의 첫 번째 액션'(한겨레출판)이 출간됐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플레이가 공동 기획한 이번 신간은 지난 2014년 출간돼 큰 공감을 얻었던 '데뷔의 순간'을 12년 만에 두 배 분량으로 개정·증보해 총 2권으로 펴낸 책이다. 주성철 편집장을 비롯한 기자들이 봉준호, 박찬욱, 윤제균, 김성훈, 강윤성, 윤가은 등 스크린과 OTT를 종횡무진하는 감독 31인을 심층 인터뷰해 완성했다.

책에는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거장들도 한때는 교통비가 없어 언덕을 걸어 넘고, 시나리오 퇴짜를 맞으며 좌절했던 '취업준비생' 시절의 치열한 고백이 담겼다.

박찬욱 봉준호 등 세계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들과 장항준 등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 등의 연출 데뷔기에 대한 에세이가 출간됐다./사진=한겨레출판 제공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현장 연출부 막내 시절, 처음 슬레이트를 치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새끼손가락이 끼어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핀잔을 들었던 얼뜨기 시절의 일화를 고백한다. 박찬욱 감독 역시 무명 시절 성공한 이들을 향해 "그 돈의 10분의 1만 내게 줘도 훨씬 잘 만들겠다"고 험담을 쏟아내는 이른바 '착각의 힘'으로 혹독한 시간을 견뎌냈다고 회상한다.

감독들의 데뷔 궤적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외환위기 휴직 중 쓴 시나리오로,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대기업 퇴사 후 대학원 진학으로 방향을 틀어 데뷔했다. 첫 현장의 서투름도 예외가 아니어서 윤제균 감독은 '레디'와 '액션'을 숨 쉴 틈 없이 외치다 촬영 감독에게 제지당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데뷔를 향한 가시밭길도 처절했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마흔 무렵까지 모친에게 하루 만 원씩 용돈을 타 쓰며 버텼고,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김성훈 감독은 첫 작품 흥행 실패 후 7년 간 아내의 경제력에 의존해야 했다.

가장 눈길을 끌는 대목은 47세에 '범죄도시'로 화려하게 데뷔한 강윤성 감독의 이야기다. 대학 시절 단편 영화 연출을 계기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나 30대에 귀국한 후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40대가 되도록 끊임없이 제작이 무산되는 고배를 마시며 구두 가게와 옷 가게를 운영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3년 넘게 서른 번이나 고쳐 쓴 시나리오를 들고 포기하지 않은 끝에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이 밖에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의 극초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이야기, 단체 행동으로 연출부를 그만두었다가 혼자 몰래 복귀했던 박찬욱 감독의 비하인드 등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속사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은 정해진 관문이나 시험 없이 불확실성을 견뎌내야 했던 감독들의 입을 통해 무언가가 되기 전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통과하는 법을 알려준다"며 "이루고 싶은 꿈 앞에서 불안과 행복을 동시에 안고 사는 모든 청춘에게 건네는 뜨거운 위로와 현실적인 응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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