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오중이 에세이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수오서재)을 출간했다. 아들의 극희귀질환을 마주한 아버지의 시간과 가족이 함께 견뎌온 아픔, 그 속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를 진솔하게 담아낸 책이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상처를 글로 꺼내놓으며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에세이는 권오중이 배우로서 대중에게 보여준 모습 너머,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온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들의 질환을 알게 된 뒤 겪어야 했던 혼란과 고통, 가족을 향한 사랑, 그리고 절망의 시간을 지나며 새롭게 깨달은 삶의 가치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배우 권오중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과, 그 아들과 30년을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을 출간했다. /사진=본인 제공
권오중의 아들 혁준 씨는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15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 극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권오중은 과거 방송에서 2014년 아들의 질환을 알게 됐지만,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까지는 4년이 더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 질환의 실체를 파악하기까지 이어진 불확실성과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시간은 그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그러나 책은 고통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권오중은 아들을 남들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살아가지만 매일 온 힘을 다해 삶을 일구는 존재로 바라본다. 아들이 아버지의 삶에 매 순간 기적을 선물해 준다는 고백에는 가족이 함께 아픔을 통과하며 발견한 사랑과 감사가 담겨 있다.
혁준 씨가 자신의 삶을 예술로 표현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가족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2023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그림 작업을 이어왔으며, 예술의전당에서 첫 전시를 열고 작품 판매에도 성공했다. 이후 미국 시애틀과 뉴욕 등에서도 초청을 받아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 10일 열린 ‘2026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대상 시상식’에서는 서양화가로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권오중은 아들이 자신만의 빛깔로 인정받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과정을 대견하게 여긴다. 아들의 성취는 단순히 한 예술가의 성공을 넘어, 가족이 지나온 고통의 시간이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책의 출간 과정에서 배우이자 소설가인 차인표의 격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차인표는 권오중에게 자신의 삶을 글로 써보라고 제안하며, 그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응원했다. 권오중은 이를 계기로 자신이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는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실은 걸어 나올 수 있는 터널이었음을 깨닫게 됐다는 취지의 소회를 전했다.
권오중의 에세이가 출간된 날은 그의 아내 엄윤경 씨의 생일이기도 했다. /사진=본인 제공
친한 선배 배우이자 소설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차인표는 추천사에서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쓴다는 것은 깊숙이 묻어두었던 아픔을 꺼내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부끄럽고 고통스럽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려운 과정의 끝에는 저자 자신뿐 아니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회복이 기다린다고 강조했다.
차인표는 권오중이 혼자 앓던 아픔의 문지방을 넘어 수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이어 “어둠을 뚫고 떠오른 빛은 온 세상을 비춘다”는 말로 책이 지닌 위로의 의미를 전했다. 개인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 역시 추천사를 통해 아픔과 삶의 의미를 연결했다. 이 목사는 누구나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만나지만, 고통이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권오중이 아들의 희귀질환과 함께 오랜 시간을 걸어오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바라보게 됐고, 품기 어려웠던 것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책의 제목인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이 전하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고통 자체를 부정하거나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기보다, 아픔을 겪은 시간이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권오중의 이야기는 희귀질환을 가진 자녀와 살아가는 가족 뿐 아니라 각자의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들에게도 공감의 여지를 남긴다.
책이 세상에 나온 날이 아내 엄윤경 씨의 생일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권오중에게 이번 출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작업인 동시에,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곁을 지켜준 아내와 가족에게 전하는 고백이기도 하다. 엄윤경 씨는 책을 받아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며, 함께한 시간을 다시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권오중은 이번 에세이를 통해 아들의 질환이라는 가족의 아픔을 개인적인 사연에 가두지 않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했다.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아픔이 반드시 아픔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