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은 2026년 연중기획 'AI와 시장경제 2.0,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를 통해 AI 혁명이 가져오는 산업과 시장의 변화,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다. 창간 15주년을 맞아 AI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구조, 자본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보고,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기술 패권을 넘어 경제 패권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누가 더 뛰어난 AI 모델을 개발하느냐 못지않게 누가 AI를 활용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며, 지속적인 수익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어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AI를 제조업과 소비, 공공서비스 등 경제 전반에 확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은 자체 AI 인프라를 구축해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추면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AI를 국가 경제성장과 기업 경쟁력의 새로운 동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세계적인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전자, 기계 등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AI로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편집자주]
▲美, AI 기술 넘어 생태계 전체를 수출한다
[미디어펜=김태균 편집국장]미국의 AI 전략에서 주목할 대목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지배력이다. 美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미국 AI 행동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을 통해 AI 혁신 가속화와 인프라 구축, 국제적 주도권 확보를 핵심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특히 미국산 AI 기술을 동맹국과 협력국에 수출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美 상무부는 올해 4월 '미국 AI 수출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기업 컨소시엄의 통합 AI 기술 패키지 제안서 모집에 나섰다. 7월 발표에 따르면 총 78건의 신청서가 접수됐다. 수출 대상은 AI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AI 반도체와 서버 등 하드웨어, 데이터 처리체계, AI 모델, 사이버보안, 산업별 응용서비스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방식이다.
美 정부는 선정된 컨소시엄에 정부간 협력과 금융지원 접근, 수출허가 심사 등에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신청된 78건이 모두 승인되거나 실제 수출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이 AI기술을 판매하는 동시에 자국 기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해외로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한 국가가 미국산 AI인프라를 도입하면 초기 반도체와 서버 구매뿐 아니라 이후 클라우드 사용료와 소프트웨어 구독료, 유지·보수 비용 등에서도 지속적인 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
AI경쟁이 일회성 제품 판매에서 장기적인 서비스 수익과 플랫폼 지배력 경쟁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 기업에도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안겨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력기기와 냉각설비,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에도 시장이 열릴 수 있다.
반면 AI서비스와 플랫폼의 핵심 수익이 해외 기업에 집중된다면 국내 기업은 인프라를 공급하면서도 최종 서비스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산업에 얼마나 많은 제품을 공급하느냐를 넘어 가치사슬의 어느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느냐다.
미국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어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AI를 제조업과 소비, 공공서비스 등 경제 전반에 확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은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할지 새로운 도전의 기로에 있다. /사진=AI 생성
▲中은 공장으로, 유럽은 자체 AI 인프라로 승부한다
중국의 접근은 미국과 차이가 있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인공지능+' 행동계획은 AI를 과학기술과 산업, 소비, 민생, 공공행정 등 경제·사회 전반에 접목하는 것을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 중국은 2027년까지 차세대 지능형 단말기와 AI 에이전트 등의 보급률을 70% 이상으로 높이고, 2030년에는 90%를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제시한 정책 목표로, 실제 보급 실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주목하는 분야는 산업 현장이다. 제조공정 최적화와 설비 운영, 품질관리, 물류, 연구개발 등에 AI를 활용해 기존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중국은 거대한 제조업 기반과 내수시장, 산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AI 모델의 성능 경쟁과 별개로 실제 공장과 생산현장에서 기술을 적용하고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AI가 제조원가를 낮추고 불량률을 줄이며 신제품 개발기간을 단축한다면. 효과는 제품 가격과 기업의 수익성에 반영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경계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중국 기업이 AI를 활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개선한다면 우리 기업의 기존 기술력과 제조 경쟁력만으로는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유럽은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해 7월 최대 7개의 AI 기가팩토리 구축을 위한 공모 절차를 시작했다. EU와 회원국이 최대 100억 유로를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투자 최소 200억 유로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공공 지원과 민간투자를 합치면 300억 유로 이상 규모다. 이는 확정된 투자 집행액이 아니라 공공 지원과 민간투자를 결합한 투자 구상이다.
유럽이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이유는 자체 연산능력을 확보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자동차와 기계, 화학, 의료 등 기존 산업에 AI를 접목하려면 안정적인 연산 인프라와 산업별 데이터 활용체계가 필요하다. 유럽은 이를 통해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중소기업과 연구기관에도 AI 활용기회를 제공하려는 방침이다..
미국이 AI 생태계의 세계시장 확장을 추진하고 중국이 대규모 산업 적용에 집중한다면, 유럽은 산업 경쟁력과 기술 자율성을 함께 확보하려는 것이다.
세 지역의 전략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흐름이 있다. AI가 더 이상 일부 정보기술 기업만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생산성과 산업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韓의 선택…제조 경쟁력을 AI 수익사업으로 바꿔야
우리나라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제조업 기반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전자, 기계 등 다양한 산업에서 축적한 생산기술과 공정 운영 경험은 AI와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AI시대의 경쟁력은 이런 자산을 활용해 생산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새로운 수익을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LG전자의 스마트팩토리 사업은 제조 경험이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LG전자는 오랜 기간 축적한 제조 데이터와 공장 운영 노하우에 AI와 디지털트윈, 로봇 기술을 결합해 외부 기업에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2024년 7월 LG전자는 그해 외부 고객사 대상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수주 규모를 약 2000억원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당시 2030년까지 외부 매출을 1조원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2000억원은 당시 회사가 제시한 수주 전망치이며, 1조원은 장기 매출 목표다. 실제 달성 실적과는 구분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기존 제조 경쟁력이 새로운 서비스와 솔루션 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공장에서 제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그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를 다른 기업에 판매해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I가 생산비용을 줄이는 도구를 넘어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내는 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다른 산업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AI를 활용한 설계와 공정 최적화, 생산수율 개선이 중요하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연구개발과 생산공정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기술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
조선업에서는 선박 설계와 생산계획, 용접·검사 자동화 등에 AI를 적용할 수 있다. 건설과 기계 산업에서도 설계 오류 감소와 공정관리 효율화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AI를 도입했다고 해서 생산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실제로 비용을 얼마나 절감했는지, 생산량과 품질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새로운 매출과 수익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정책 역시 AI 도입 기업 수나 투자금액뿐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AI 활용격차는 중요한 과제다. 대기업은 자체 투자와 전문인력을 통해 AI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초기 비용과 인력 부족, 데이터 확보 문제에 직면하기 쉽다.
이 격차가 확대되면 AI 혁신의 성과가 일부 기업에 집중되고 산업 생태계 전체의 생산성 개선은 제한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인프라와 산업별 데이터, 전문인력 지원체계를 갖추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AI시대의 국가경쟁력은 기술 개발과 산업 활용이라는 두 축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첨단 AI 모델과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면서도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향후 AI가 가져올 경제적 성과는 투자 규모나 기술 발표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AI를 도입한 기업이 얼마나 더 빠르게 생산하고, 더 적은 비용으로 높은 품질을 구현하며,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AI 경쟁에 뛰어든 지금, 한국이 찾아야 할 해답도 여기에 있다. ‘AI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보다, AI를 통해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느냐’ 이것이 대한민국이 AI 시대의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미디어펜=김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