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전기차 시장…'변방서 주류로'(中)
[미디어펜=김세헌기자] 전기차는 1·2차 석유파동이 벌어졌던 1970년대부터 완성차 업계가 실질적인 기술 검토에 들어갔던 미래형 자동차였다.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정도로 모터를 돌리려면 안정적이고 출력이 큰 배터리가 필요했고 그 수명 또한 자동차 보유 기간만큼 길어야 했다. 아이디어는 선명했지만 개발이 더뎠던 이유다.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뜻하는 2차전지 분야에서 방전이 잘됐던 니켈 계열 배터리를 대체하는 리튬 계열 배터리가 등장하면서 전기차의 상용화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비싸고 불편하다'는 인식은 그만 

   
▲ 대부분의 전기차 완성차 업체들이 내놓은 전기차 제품의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아직 150㎞에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전기차업체들은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려나가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사진은 파리의 전기차 대여 시스템인오토리브. / 연합뉴스
2000년대 들어 고유가 이슈가 글로벌 경제를 짓누르자 유력 완성차 업체들은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배터리 업체들과 손을 잡고 전기차 개발에 속도를 높였다. 현대·기아차도 LG화학, SK이노베이션과 제휴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출력 배터리로 모터를 돌리고,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인버터가 속도를 조절하게끔 만든 전기차 콘셉트카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전기차의 대중화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고속 충전소가 없으면 충전에 오랜 시간을 쏟아야 하고, 고가의 배터리를 장착하다 보니 가격도 비쌌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은 짧은 거리의 도심 주행에 적합하고, 무게가 가벼워 배터리를 덜 쓰는 중·소형 전기차를 양산 모델로 내놨다. 2009년에 나온 미쓰비시의 '아이미브', 2010년에 출시된 닛산의 '리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후 2년여간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는 더뎠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장거리 주행에 문제가 없고 주유가 편한 엔진 차량을 선택했고 전기차에는 '비싸고 불편하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런 시각을 180도 바꿔놓은 건 업계의 신성(新星) 테슬라 모터스다. '비싸서 더 값진 전기차'를 만들어 구매력 높은 고객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테슬라 제품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양이 매우 많다. 플래그십 차량 '모델 S'는 원통형 2차전지 60∼85㎾h분이 들어간다. 기아차 쏘울 전기차에 투입된 파우치형 2차전지 용량인 27㎾h에 비하면 2∼3배 큰 용량이다.

결과적으로 강한 출력을 냈고 장거리 주행도 가능해졌다. 모델 S 기본형의 최대출력은 302마력, 옵션으로 배터리를 더 얹으면 416마력까지 오른다. 

특히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5초로, 이 정도면 최고사양 프리미엄 세단 수준이다.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는 427㎞에 이른다.

전기차 위세 확대, 에너지산업 전환 예고 

전기차 확산이 가속화하면서 배터리 등 부품은 물론, 자동차 산업 전반에 다양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기차와 연계한 여러 사업들이 전력 등 에너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의 ‘대중화 시동 건 전기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이 빨라지면서 기업 중심의 경쟁 구조 고착이 심화할 전망이다.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접생산 등의 영향으로 기존 배터리 업체들의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LG화학, 파나소닉, 삼성SDI, BYD 등 기존 배터리 시장 선도업체들이 고객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한편, 자동차 업체와 제휴가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시장이 동반성장할 것이라 관측도 나온다. 5~10년 사용된 전기차의 배터리는 최대 80%의 용량을 재활용할 수 있다. 전기차에 쓰였던 배터터리가 대용량 전력 저장이나 비상용 전원 등 전기차 외 다른 용도에 적용되는 것이다. 

   
▲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X’/ 미디어펜 자료사진

전기차에 쓰인 배터리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셀과 팩, 모듈 수준에서 분류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아직 처리비용이 높아 경제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배터리를 분류, 재가공하고, 용도를 전환하는 사업은 자원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또한 기존 자동차 업체보다 혁신으로 무장한 전기차 전문업체의 등장도 예고되고 있다. 테슬라와 같이 최고급 편의 사양에 운전 성능은 물론, 유려한 디자인까지 결합한 프리미엄급 자동차를 개발, 생산하는 전문업체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충전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면서 자사 모델 고객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지난 1월 CES에서 신생전기차 업체인 패러데이 퓨처는 신개념 스포츠 세단인 ‘FFZERO1’을 발표하였다. 지난해 12월에 10억달러를 투자해 생산 라인 구축 계획을 발표한 이 회사는 테슬라에 이어 기존 자동차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애플·구글 "우리도 자동차 기업이다"

IT기업들의 전기차를 포함한 자동차사업 진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등 인공지능 기술이 융합되면서 전기차는 물론 내연기관에서도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시장이 열릴 것이란 예측이다.

테슬라의 경우 최근 ‘Autopilot’ 기능 등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전기차에 자율주행 기술이 접목될 경우 최적의 경로와 속도를 예측할 수 있어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자율주행 기술은 청소년이나 노년층,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뜨릴 전망이다. 특히 운행 자동차 간 혹은 클라우드와 통신에 기반한 안전한 자동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애플, 구글 등 IT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자동차에 대한 기존 개념은 물론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날도 멀지 않았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은 현재 커다란 전환기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GM, 크라이슬러, 도요타, 현대차 등 글로벌 자동차 대기업들의 앞에 나타난 상대가 이제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같은 IT 분야의 대기업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 IT 대기업의 무기인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가 자동차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며 “특히 IT 기술의 발전이 그동안 성숙산업으로 비춰지던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으며, IT기업이 자동차 산업으로 뛰어들기 쉬운 여건이 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