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한계기업 쓰나미 우려
[미디어펜=김세헌기자] 중국 경제의 둔화,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등 우리 경제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 산업부 김세헌기자
한계기업은 자신은 물론 해당 산업과 금융산업을 부실하게 만들어 우리 경제를 힘들게 만드는 위협요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보다 기업부채를 더 큰 위험하게 보는 것도 부채의 상당 부분이 이런 부실기업들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이 628개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부채상환능력을 분석한 결과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은 2010년 24.7%에서 지난해 1분기 34.9%로 크게 늘어났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눠 산출하는 데 그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사업해서 번 돈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져 일시적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든 경우라면 예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하면 기업으로서 존속 가치는 ‘제로(0)’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 중 한계기업은 2009년 2698개(12.8%)에서 지난해말 3295개(15.2%)로 증가했다.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9.3%에서 14.8%로 급증한 것도 국가 경제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황이 이럼에도 추가 대출로 더 늘어난 이자를 갚으며 연명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를 봐도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으로 1 미만인 기업이 급증했다. 

일각에선 한계기업이 늘어난 요인을 경제 여건이 나빠진 상황에서 찾는다. 이에 반해 과감한 개혁과 혁신에 주저하는 기업, 기존 대출의 부실 처리에 소극적인 금융사, 시급성을 알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왔던 금융당국의 미온적 태도가 한계기업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계기업에 증가에 따른 경제계 파장도 간과할 수 없는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한계기업이 특정 산업군에서 10% 증가할 경우 고용증가율은 0.53%포인트, 투자율은 0.18%포인트 각각 감소한다. 이는 정상기업들이 그만큼 고용이나 투자에 나설 여력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반면 지난해 기준 15.6%로 추정되는 한계기업 비중을 10%포인트 하락시킬 경우 정상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11만 개 늘어난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50만개 안팎인 점을 볼 때 이는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닐 것이다.
 
특히 서비스업종의 경우 노동집약적인 특성 때문에 한계기업 증가가 고용증가율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 앞으로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미국의 금리인상 본격화, 신흥국 리스크(위험) 등으로 대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면 수익성 저하 및 비용상승으로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이들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부실이 확대될 수 있는 경고가 나온다. / 연합뉴스

부실기업이 도산·퇴출당할 경우 당장 일자리 감소를 우려했던 정부 정책과 이에 따른 금융권 지원 때문에 한계기업이 양산됐고, 이 때문에 사실상 정상기업들의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대출에 의존해 그야말로 간신히 연명하는 기업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는 우리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동일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름’을 짜내야 한다.

고름이 살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한계기업이 정상기업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보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거나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한계기업은 더는 버티기가 어려워질 게 뻔하다.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개정하고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제정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계기업 증가에 따른 기업 줄도산은 금융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위기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리기 전에 서둘러 한계기업 정리를 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통상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은행이 대출을 회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비 올 때 우산을 빼앗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 이는 그 기업이 우산을 스스로 들고 있고, 비가 그치면 활기차게 사업을 할 역량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다. 

우산을 들 힘조차 없는 기업을 위해 우산을 받쳐주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기업에는 체력과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은행도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신생기업에 우산을 나눠줄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절호의 기회다. 

물론 한계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옥석’을 제대로 가려야 할 것이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한계기업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가려내되, 가능성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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