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악의적 채증으로 시장 황폐화 부추겨
[미디어펜=고이란 기자] 이동통신사간 흠집내기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악의적 채증(채집된 증거)으로 서로 타 지점을 감시하고 허위 채증으로 경쟁사를 고발해 영업을 방해하고 있는 행태가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결국 이같은 갈등은 시장을 황폐화시키고 소비자의 건전한 선택권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 이동통신사간 흠집내기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악의적 채증 경쟁으로 이동통신산업 시장을 황폐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이유로 단통법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미디어펜

20일 기자가 입수한 한 이통사 대리점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5월 경쟁사 개통채증 쿼터부여' 문서를 살펴보면 각 대리점의 2~4월 채증실적 수치를 비교해 놓고 5월 채증목표량을 제시했다. 채증을 하는데 필요한 내역도 구체적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채증이 증빙되면 채증인에게 건당 계좌로 40만원, 대리점 예비비로 40만원, 총 80만원을 포상한다.  쉽게 말해 타 대리점의 불합리적 판매 정황을 포착하고 신고하게 되면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것. 채증확인을 위해 대리점 조사에 나서게 되면 2~3일 가량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게 돼 지장을 초래시킬 수 있다.

이에 관련 이통사는 “불법적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자사 뿐 아니라 이동통신3사 모두 시장 모니터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비단 한 곳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통3사가 대부분 음성적으로 경쟁사의 대리점 채증 독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도 넘은 채증독려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이통사다. 견제 장치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견제를 넘어 악의가 개입된다면 지나친 채증경쟁은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서비스와 브랜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동통신사업에는 치명적이다.

고객 뺏기에 치중한 나머지 무리한 가격 경쟁은 물론 법망을 피한 단말기 보조금 편법도 등장하면서 시장질서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서로 공멸할 수 밖에 없는 핑퐁싸움이다. 더욱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권을 잃게 하는 원흉이 된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타사에서 채증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되면 경쟁사 역시 채증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스로 자중하는 분위기도 확인된다. 채증에 대해 한 이통사 대리점 관계자는 "이런 거 할 시간에 핸드폰 하나라도 더 파는 게 낫죠"라며 "팜플렛 형태로 본사에서 내려온 것을 본 적은 있지만 직원들은 동종업계 건드려봤자 좋을 것 없다는 인식이 커 활성화되지는 않는 분위기다"고 귀뜸했다.

이같은 이통사 흠집내기의 배경에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통법 시행 이후 번호이동과 신규가입자 보다는 기기변경이 주를 이루면서 가입자 유치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단말기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시장 모니터링이란 명목으로 행하는 무리한 채증이 허위신고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일종의 영업방해를 통해 가입자 뺏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 입수한 '5월 경쟁사 개통채증 쿼터부여' 공문

한편 단통법 시행 이후 채증경쟁으로 인한 종사자간 분쟁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골목상권의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중소 판매점·대리점 통신종사자들의 권익보호 단체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지난 2월 기자회견을 통해 일선 판매점·대리점들은 ▲영업정지 ▲사전승낙철회(사실상폐업) ▲전산차단 ▲과태료 ▲과징금 ▲구상권 ▲패널티 ▲단말기 공급중단 및 거래 철회 등의 중첩적 처벌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면 직영점·대형유통·오픈마켓은 자체 프로모션을 강화하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카드 할인·상품권·마일리지 등을 활용해 일반 유통이 규제에 가로막혀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를 허용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통협회 관계자는 “단통법 이후 골목상권은 경영 악화로 지난 한 해만 2000개가 넘는 판매점이 폐업했고, 만 명에 가까운 청년 실업자가 발생했다”고 호소했다.

협회는 규제의 칼끝을 단통법으로 얼어붙은 시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유통점이 아니라, 이통사 직영점, 자회사, 대형유통, 오픈마켓 등 이른바 대기업형 유통점에 대해 단통법 실태점검과 사실조사로 이어져야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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