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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33)-법이 우선인가, 인륜이 먼저인가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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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09-09 11: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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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33)-오만과 아집이 부른 비극적 파멸
소포클레스(BC 496~406) 『안티고네』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내가 살고자하면 오빠의 시신은 들짐승과 새들의 밥이 되고, 내가 거두어 장례를 지내면 내가 죽는다. 어찌해야 하나.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비극과 파멸은 신의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인간의 무지와 오만의 결과인가. <안티고네>는 바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저질러진 인간의 고집과 오판이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파멸을 불러 올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비극적 상황이더라도 운명에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안티고네>가 보여주는 비극은 질기고 질긴 저주스런 운명의 굴레가 인간의 예지와 윤리관을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시험하는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안티고네>는 그 갈등 구조를 등장인물 군에 따라 다면적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독자를 그 비극적 상황의 당사자로 대입시킨다.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테베에서는 오이디푸스 왕의 쌍둥이 아들인 에테오크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1년씩 왕위를 교대하기로 한다. 하지만 먼저 왕위를 차지한 장남 에테오크레스가 1년이 지나도 왕위를 폴뤼네이케스에게 넘겨주지 않자, 폴뤼네이케스는 장인의 나라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베를 공격한다. 에테오크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서로 교전 중에 전사한다.

테베의 섭정이던 크레온은 조국을 배신한 폴뤼네이케스의 주검을 들판에 버려 들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면서, 주검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려는 사람은 누구든 돌로 쳐 죽이라는 포고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 명령을 어긴 사람이 나온다. 폴뤼네이케스의 여동생 안티고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녀는 남몰래 오빠의 시신을 묻고 장례의식을 행함으로써 크레온이 내린 포고령의 정당성 논란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불러온다. 

오이디푸스에겐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자매가 남아 있었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주검을 장례 치르자고 동생에게 권유했지만, 이스메네는 동참을 거부하고 크레온의 명령에 복종하려고 했다. 이 비극을 관통하는 갈등구조는 국가의 법이 우선인가, 아니면 인륜, 나아가 '신의 법'이 우선인가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러한 법과 윤리의 충돌상황은 양측 모두에게 비극적 상황으로 귀결된다.  

<안티고네>의 플롯 구성은 매우 치밀하면서도 간결하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인물군을 설정하여 각각의 갈등 상황에서의 행위 기준을 대비시켜 끊임없이 관객과 독자들의 판단을 끌어들여 극에 몰입하게 만들다. 핵심적인 대립의 중심인물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이다. 크레온은 섭정으로서 국가의 배신자였던 폴뤼네이케스를 단죄할 책무가 있었다. 

반면 안티고네의 경우 오빠가 비록 국법을 어겼지만, 그의 주검조차 거두지 못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혈족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법을 초월하는 ‘신의 법’을 따르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국법에 의해 자신이 죽더라도 오빠의 시신을 더 이상 욕되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가 옳은가? 사실 그리스의 관습에 의하면, 반역자의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한 것 자체는 잘못된 결정은 아니다. 문제는 그 법을 죽은 자의 혈족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이 인륜의 도리에 부합하는 것이냐의 여부일 것이다. 예외 없는 법의 집행이냐? 아니면 예외를 둘 것이냐가 크레온이 직면한 고뇌다.

안티고네는 혈족인 친오라버니를 무덤에 묻어주는 것이 자신의 죽음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라며 말한다. 그녀는 두 오빠가 서로 갈등하다 죽음에까지 이른 상황을 초월하여 혈족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안티고네가 오빠의 주검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안티고네는 만약 죽은 자가 자신의 아들이었거나, 남편이었다면 시민들과 대항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과 남편은 잃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생길 수 있지만, 오빠는 다시는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의 대본은 소포클레스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나 배우들이 가필한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아무튼 안티고네가 오빠의 주검을 거둔 이유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식의 주검을 들짐승의 밥으로 남겨둘 수 있는 매정한 어머니 또한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아들 또한 혈족이 아닌가. 물론 조국을 배신한 아들에게 냉정할 수 있는 부모가 있긴 하겠지만, 이 또한 인륜과 국법 사이의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안티고네가 오빠의 주검을 거두려는 결심을 한 배경에는 복잡한 심리상태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기엔 비운의 아버지 오이디푸스에 대해 유달리 애달파했던 안티고네가 오이디푸스의 피를 받은 오빠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더해져 그런 행위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든 안티고네의 행위는 숭고하기 그지없다. 

크레온은 자신의 포고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차마 돌로 쳐 죽이지는 못하고, 석굴에 가두어 죽게 하는 형벌을 내린다. 하지만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 역시, 안티고네를 국법에 따라 죽이려는 부친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크레온은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죽은 자를 또 죽이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충고마저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이 "운명의 칼날 위에 서 있다"고 경고하면서, 크레온의 어리석은 고집이 결국 큰 죄를 짓게 되고 말 것이라는 압박한다. 또 크레온 아들의 죽음까지 예언한다. 

결국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인륜적 행위를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아들과 아내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석굴 안에서 목을 매 죽은 안티고네를 끌어안고, 그녀의 약혼자였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자살하고 만다. 아들의 죽음 소식에 크레온의 아내마저 칼로 자결한다. 크레온의 어리석은 결정이 자신 가정의 비극적 파멸을 불러온 것이다.

크레온은 왜 안티고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을까? 그가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크레온의 심리상태를 짐작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떤가.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아내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이 아니었던가.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는 비극적 패륜을 저질렀다. 또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크레온의 누이인 이오카스테가 자살하게 되지 않았던가. 크레온의 이런 사원(私怨)이 오이디푸스의 아들인 폴뤼네이케스에 대한 처참한 형벌의 욕구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크레온의 행위에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자신의 절친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여 보복한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분풀이를 했다. 하지만 결국 헥토르의 부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애끓는 부정에 감동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어 장례를 치르도록 해 주지 않았던가. 최소한 크레온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안티고네의 인륜적 행동을 허용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협량(狹量)이었고 왕재(王才)가 아니었다. 결국 크레온은 비극적 파멸을 자초한 셈이다.  

<안티고네>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을 통해 무엇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정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엄격한 법의 집행도 중요하지만, 그 법의 정신이 인간의 자연법적인 도리와 신의 섭리와 배치될 때, 인간 사회에 또 다른 갈등과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행위를 선택할 때, 사회의 법과 규범은 물론 인륜과 신의 섭리를 반추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겸허한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소포클레스가 코러스를 통해 강조하는 이 비극의 교훈은 그래서 더욱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그리고 신들에 대한 경의는
침범되어서는 안 되는 법.
오만한 자들의 큰 소리는
그 벌로 큰 타격들을 받게 되어
늙어서 지혜를 가르쳐준다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2011).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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