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명예훼손 황당 판결…문, 자신의 행동부터 돌아봐야
   
▲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중국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지록위마라는 유명한 사자성어가 있다. 유래는 이렇다. 진시황이 죽은 뒤 환관 조고는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쥐었다. 어느 날 조고는 호해에 사슴을 갖다 바치면서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호해가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라고 물었다. 그리곤 신하들을 둘러보며 의견을 물었다. 

조고의 위세를 두려워하던 신하들은 대부분 사슴이라고 답했다. 그중 눈치가 없거나 용감하거나 했던 일부 신하들은 정직하게 말이라고 대답했는데, 조고는 이걸 기억했다가 뒷날 죄를 뒤집어씌워 그들을 죽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그 누구도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자가 없게 됐다는 이야기다. 사전적으로 본래는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누린다는 말이지만 현재는 사실(事實)이 아닌 것을 강압적으로 사실로 만들어 인정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탁월한 오리의 비유

이 고사성어를 떠올린 것은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발언이 명예훼손이라며 거액의 위자료 배상을 판결한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김진환 판사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그의 재판이 얼마나 불성실하고 막무가내 논리인지 몇 차례 지적했다. 문재인 비판하는 국민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의심스런 판결이라는 점도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또 다른 면에서 이 재판은 곱씹을수록 아주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차원이나 판사의 엉터리 논리 문제만이 아니다. 마침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의 글을 읽은 탓도 있을 것이다. 이 대표가 조갑제닷컴 사이트에 올린 "'오리'이기를 否定하는 '오리'에 대한 '指鹿爲馬'의 判決"이란 글을 최근에 읽었는데,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문이었다. 이번 소송의 성격을 이보다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글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독자들이 알아야 하겠기에 이 대표 글 중 핵심이 담긴 단락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 문재인 전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명예훼손 판결이 논란을 빚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아무리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이라 자랑한들 언행에 있어 '오리처럼 걷고 헤엄치고 소리를 냈다' 한다면 오리라고 불렀다 해서 그걸 과연 처벌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언론자유를 넘어 그 실체를 가리는 문제이다./사진=연합뉴스

"(중략)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상념은 서양(西洋)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오리'에 관한 격언(格言)이다. "만약 '오리'처럼 생기고, '오리'처럼 헤엄치고, '오리'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오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오리'를 대상으로 '오리'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오리'의 행동과 소리를 보고 듣는 '제3자'의 몫이지 '오리' 자신의 몫이 아니다. 

이에 따른다면, 고영주 씨와 문재인 씨 사이에 송사(訟事)의 대상이 된 문재인 씨가 '공산주의자'인지의 여부는 문재인 씨 자신의 주장보다는 그의 언행을 시청(視聽)한 '제3자'에 의한 판단의 몫이고 고영주 씨가 바로 이 '제3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혹자(或者)는 이번 사안을 '언론자유'라는 기본권 침해의 시각(視角)으로 단순화시켜 시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사안은 '언론자유'의 침해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리'를 보고 '오리'라고 한 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가리는 것"이 그 실체(實体)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후략)"

'오리처럼 걷고 헤엄치고 소리를 냈다'면 오리다

요컨대 문 전 대표가 아무리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이라 자랑한들 언행에 있어 '오리처럼 걷고 헤엄치고 소리를 냈다' 한다면 오리라고 불렀다 해서 그걸 과연 처벌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고 이사장의 발언을 거두절미해서 개인이 주관적 판단으로 시비를 가릴 게 아니라, 여론조사와 같은 제3자의 판단을 확인할 방법을 강구해 문재인이 오리처럼 뵌다는 것이 우리 사회 다수의 판단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법원이 그 절차 없이 명백한 오리를 보고도 오리가 아니라는 판결을 고수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지록위마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대표의 이런 주장에 거의 전적으로 동감한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다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수의 국민이 문재인을 오리로 보고 있다면 그것 역시 오리로 봤다하여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굳이 여론조사가 아니더라도 고 이사장 쪽이 제출한 문재인이 오리처럼 보이는 근거들을 재판부가 꼼꼼히만 살펴봐도 충분하다. 그리하면 문재인이 공산주의자처럼 보이고 그를 공산주의자라 확신한다 해서 명예훼손이라는 황당한 판결은 나오지 않으리라 필자 역시 확신한다. 김진환 판사처럼 근거 자료도 거부하고 변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렇게 볼만한 구체적인 정황은 도무지 찾기 어렵다'고 둘러대지만 않으면 된다. 

비슷한 이야기 같지만 이런 비유는 또 어떤가. 앞에 절뚝거리며 가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뜯어봐도 겉보기에 영락없이 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리 말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일시적으로 다리를 다쳤을 뿐이다. 장애인이 아니었지만 그 사람을 장애인이라 부른 것이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상관이 없다. 제3자인 국민이 문재인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오리로 보든 늑대로 보든 장애인으로(비유다) 보든 국민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본다는데 그게 법적인 처벌감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거꾸로 가는 세상일 것이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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