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감정 벗어나 이제는 이성 되찾을 때…안보·경제 백천간두
10월 31일 월요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들을 향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거냐!”며 새누리답지 않게(?!) 현재 사태의 본질을 건드렸다. 정 원내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야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통일된 용어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며 기자들 앞에서 의기양양해했다.

왜 기쁘지 않겠는가. 정권 출범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시비를 걸어오던 야당이 아닌가. 언론에 의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라 명명된 이른바 '최순실 파문’에서 사실 확인과 진실 규명은 뒷전인 채 오로지 대통령 하야와 정부 퇴진을 위한 무책임한 폭로와 선동적 대중 동원만이 난무하고 있다. 2016년 대한민국 수도의 심장부에서 분별없는 시민, 무책임한 언론, 대안이 될 수 없는 무능한 야당의 삼각연합이 만들어내는 헌정질서 유린 사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 칼럼에서는 먼저 최순실 파문이 대통령 하야나 탄핵이 이뤄져야 할 사유인가를 살펴보기에 앞서 과연 촛불시위가 대통령 퇴진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방식인가를 논의하기로 한다. 이어서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대통령 하야·탄핵 주장의 부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마지막에는 야당 및 좌익세력이 과연 내우·외환에 빠진 대한민국을 맡을만한 능력이 있는가를 비판해보고자 한다. 이상의 논의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질서다. 

1. 분별없는 시민: 헌정질서에 대한 몰이해, 국민주권주의는 촛불만능주의가 아니다

시청 앞 광장, 광화문 네거리에 모여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다시 나타났다. 비록 구호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한미 FTA 반대, 교과서 국정화 반대,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로 바뀌었지만 촛불시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뜻이므로 대통령이든 내각이든 그 뜻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뜻은 이상하게도 늘 박근혜 정부 퇴진이었다.
  
정녕 광장의 촛불이 국가 지도자가 마땅히 따라야할 민심(民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촛불시위대가 주문처럼 외워대는 헌법 제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국민주권주의는 광장의 촛불이 외치면 대통령이라도 물러나야한다는 그런 말이 결코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총체적 의지가 반영된 선거(대선)에서 선출된 지도자(대통령)에게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우리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체제에서의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헌법 제1조 1항이 선언한 민주공화정을 상기하라). 15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선택한(득표율 51.6 %) 대통령을 대체 무슨 근거로 1만 5천의 촛불시위대가 물러나라고 요구하는가? 1,000명 남짓의 표본을 대상으로 한 가변성이 극심한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대통령이 퇴진해야 하는가? 광장의 촛불만 들면 그들이 대한민국의 민의를 포괄적으로 대표하는 것인가?
  
대통령제를 택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직이 가지는 권한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에 헌법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중단 없이 지속되도록 여러 제도를 만들어놓았으며, 탄핵에 의한 대통령 퇴진도 입법부와 사법부의 신중한 판단(重多數制)을 거치도록 제도화해놓은 것이다.

광장의 촛불은 국가의 운명과 장래에 대한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아닌 분별없는 분노요, 원인 없는 적개심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12년 전 헌정질서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거친 탄핵심판에 대해서는 부당하니 철회하라던 그 촛불이, 오늘은 헌법을 무시하며 대통령은 무조건 하야하라고 외치는 꼴이라니. 광장의 촛불이 외치는 '민주주의의 죽음’과 '헌정질서 유린’은 정작 그들 자신이 지금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최순실 파문은 현재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허물이 없는 것도 아니며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심각하게 차질을 빚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이 절실히 요구된다./사진=연합뉴스


2. 무책임한 언론: 사실 확인(fact check)은 어디로 갔나. 기분 나쁘면 탄핵?

한국 언론의 무책임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더 말해 무엇하랴마는, 최근 국내 언론보도는 그야말로 가관(可觀) 그 자체다. 언론들은 – 보수지와 진보지를 가리지 않고 – 대통령의 권한 이양과 거국중립내각(擧國中立內閣)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말이 거국중립내각이지 사실상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 요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과연 현재 확인된 최순실 파문이 대통령 권한을 이양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대통령직 결격 사유가 되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국가를 보위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평화적 통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그도 아니면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해쳤는가?(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 선서를 보라)

현재까지 명백한 사실로 밝혀진 것은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에게 잘못을 인정한 내용이 전부이다. 나머지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중요참고인이나 잠재적 피고인들이 일방적으로 내지르는 주장(argument)에 불과하거나, 증거라 믿고 싶은 조각난 파편들을 붙잡고 언론이 제멋대로 써내려가는 추측일 뿐이다.
  
검찰 수사가 막 시작하고 있고, 사법부의 판단은 나온 적조차 없건만 한국 언론은 이미 최순실 파문을 대통령이 권한을 이양해야할 정도로 중대한 헌정질서 문란으로 단죄했다. 언론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은 정상적인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심신박약자(心神薄弱者)나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로 취급받고 있다.

확인된 사실이 아닌 주장만으로, 규명된 진실이 아닌 추측만으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저토록 모욕할 수 있는 것인지, 대체 누가 언론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었는지 묻고 싶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이라 보도하지 말라는 저널리즘의 제1원칙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인지.
  
故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렸고, 공개적으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직접 위반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 것도 확인된 바가 없다.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총애를 배경삼아 호가호위를 한 것인지, 최순실이 중대한 국정운영에 비선실세로 영향을 미쳤는지 아무 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언론이 할 일은 사실관계와 진실을 규명하는데 노력하며, 간단(間斷)없는 국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여론을 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헌정질서 유린 세력에 부화뇌동하는 것을 어떻게 언론이라 부르겠는가, '찌라시’라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다.  
  
3. 무능한 야당: 총선에 이어 대선마저 어부지리(漁父之利)?

야당의 행태도 볼 만하다. 청와대 수석들을 경질하고, 최순실과 차은택을 당장 귀국시켜 검찰 수사를 받게 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던 야당의 요구를 막상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들어주겠다고 하니 이제와선 딴 소리하는 꼴이라니. 어떤 상황에서도 국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는데 협조하는 대안적 수권정당(受權政黨)이 되기보다는 어떻게든 이번 파문을 내년 대선까지 질질 끌고 가서 정권 탈환만 하면 된다는 정상배들의 집단이기주의만이 판을 치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자살골에 힘입어 승리를 거둔 것과 마찬가지로 내년 대선도 그저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 깎아내리기로 승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이다. 야당이 집권해도 국가안보는 믿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지금부터라도 심어주기보다는, 여당이 싫으니 죽지 못해 야당을 찍겠다는 국민들을 다시 한 번 볼모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착각은 야당 스스로에게도 곤란하다. 국민들은 이미 4.13 총선의 여파를 몸소 경험하고 있다. 한 번의 어부지리가 두 번의 행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말없는 다수의 국민들이 광장의 시끄러운 촛불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한 오판(誤判)이다.
  
제1야당은 왜 1000명을 아우르는 싱크 탱크를 출범시킨 유력 대선 후보가 지지율 20 %에 답보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제2야당은 왜 믿음직한 대선 후보를 못 배출해 이 사람 저 사람을 삼고초려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두 야당은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입각한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확신하며(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통일 정책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믿으며(제4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제119조 1항), 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라 정당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제8조 4항) 그런 대선 후보를 세우는데 노력할 때다. 대내·외적 국가 위기 속에 어떻게든 대통령을 흔들어 정치적 이득만 보려는 야당은 집권당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는 화가 난다고 해서, 미워하던 대통령인데 잘 걸렸다 싶어서 감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부로 헌정질서 유린이니, 민주주의의 죽음이니 외칠 일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4. 그래도 국정(國政)은 계속되어야 한다

최순실 파문은 현재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허물이 없는 것도 아니며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심각하게 차질을 빚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는 화가 난다고 해서, 미워하던 대통령인데 잘 걸렸다 싶어서 감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부로 헌정질서 유린이니, 민주주의의 죽음이니 외치기 전에 무엇이 대한민국 헌정질서인가를 먼저 생각해보기 바란다. 한 편으로는 진실이 규명되기를 차분히 그러나 엄중하게 지켜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떻게든 위기 속의 대한민국이 표류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가는 자세가 국민과 언론, 정치권에게 요구된다.

사색당쟁에 몰두하는 정치나 폭로와 부풀리기에 여념 없는 언론에는 어쩌면 기대할 바가 못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들만이라도 나라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실 규명을 위한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민생경제 회복과 북핵(北核)위기 해결을 위한 국정운영은 그 자체로 계속되어야 한다. 계속되어야 할 것은 쇼만이 아니다. 국정도 계속되어야만 한다(Government administration must go on as show must go on) /이승수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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