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기업 총수,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서 "탈퇴하겠다"
법정단체 대한상의 전경련 흡수통합 등 환골탈태 목소리도
[미디어펜=김세헌기자] 6일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를 계기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정경 유착' 논란에 휩싸인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한 해체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정권 차원의 모금 의혹을 전방위로 제기했다. 오후에 들어서는 재단 설립에 관여한 전경련에 대한 해체 요구가 쏟아지면서 전경련 국감을 방불케 했다.

   
▲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일부 재벌 총수들이 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전경련 해체관련 질문에 손을 들어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동안 야당은 전경련에 가입한 17개 공공기관은 모두 탈퇴해야 하고, 정경유착의 통로이자 권력의 심부름 단체로 전락한 전경련 해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라고 비판해온 바 있다.

특히 이날 청문회에서 전경련 최대 회원사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앞으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일부 재벌 기업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부회장은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한 특위 위원들의 추궁이 계속되자 "전경련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 말씀드릴 자격이 없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이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겠느냐. 앞으로 전경련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거듭된 요구에 "그러겠다"고 답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런 답변을 두고 삼성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은 전경련 회원사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연간 회비도 가장 많이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탈퇴하면 전경련 위상은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경련 연간 운영 예산은 400억원 정도로, 삼성을 비롯한 5대 그룹이 내는 회비는 약 200억원에 달한다.

전경련은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 발언에 대해 미르·K스포츠와 같은 재단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탈퇴 의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묻자 "의사는 있다"고 말했다.

그룹 총수들은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한 듯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면 손을 들어달라"는 안민석 의원의 요구에 머뭇거릴 뿐 손을 들지 않았다.

안 의원이 거듭 묻자 결국 총수 9명 가운데 정몽구, 구본무, 신동빈, 김승연, 조양호 회장 등 5명이 손을 들었다.

이들 중 구본무 회장은 "전경련은 헤리티지 단체처럼 운영하고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2011년에도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권의 개편 요구에 헤리티지재단 모델을 연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결과를 내놓지 않아 논란이 낳기도 했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해체 요구와 관련 "불미스러운 일에 관여됐다는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체를 검토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경련 역할·기능 대한상의 등에 이전 필요성 대두

전경련은 산업화 초기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이제는 본래의 역할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면서 기업들로부터도 해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61년 고 이병철 초대 회장 등 13명의 경제인이 설립한 '한국경제협의회'를 전신으로 활동을 시작한 전경련은 경제 성장기에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며 산업 발전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일해재단 자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 등에 연루되면서 '정경 유착의 창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1년에는 주요 회원사들에 로비 대상 정치인을 할당하는 문건이 폭로돼 물의를 빚었고 올해 초에는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과 탈북자 단체를 우회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는 전경련이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 미국의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연구 단체로 거듭나는 등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경 유착으로 유명했던 일본 게이단렌이 2002년 일경련과 통합하면서 공익성이 강한 기구로 탈바꿈한 것처럼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경련을 흡수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전경련은 아직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정부와 대기업의 가교 구실을 하는 등 대기업을 대변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무엇보다 뚜렷한 범죄 혐의가 입증된 것도 아닌데 민간단체인 전경련의 해산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결의안에는 민간단체인 전경련에 해체를 강제할 법적 효력이 없다.

정부가 법인 등록을 취소하는 방안이 있지만,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0월 열린 산업부 국정감사에서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법인의 설립 허가·취소는 헌법에 보장된 결사의 자유와 사적 자치의 원칙을 침해하는 사안이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다만 외부의 비판이 커지면서 전경련 내부에서도 개편 방안을 검토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일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는 "앞으로 조직 개편 방안에 대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임기가 내년 2월까지로 곧 사령탑 교체를 앞둔 상황에서 전경련이 시간만 끌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