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특검, 기업 수사 접근 방식 바꿔야
정경유착 문제, 정황만 판단 말고 신중하게 접근
[미디어펜=김영민 산업부장]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결국 삼성은 다시 '초긴장모드'로 전환됐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가고 있다. /연합

특검은 1차 활동 시한이 이달 말까지로 정해져 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과도 맞물리는 시기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 구속을 통해 대통령·비선실세와 기업들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삼성은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후 경영 전반을 재정비하려던 계획이 다시 무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조직개편을 통해 올해 사업계획 등 전반적인 경영 전략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삼성 경영진들의 허탈하고 답답한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삼성은 현재 미래전략실에 대해서도 해체 또는 재편을 검토 중이다. 삼성의 컨트롤타워를 없애느냐 새롭게 개편하는냐를 두고 총수를 비롯한 수뇌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속되는 특검의 압박으로 제대로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IT기업인 삼성전자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내다보고 빠르고 정확한 선택을 하는 것이 경영 전략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 경쟁자들과 피말리는 생존싸움을 벌여야 한다.

따라서 연말연시에 이뤄지는 조직개편은 새로운 환경에 맞게 사업을 조율하고 추진하기 위해 몸을 담금질하는 첫 단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이후 삼성은 경쟁력 있는 몸을 만들기는 커녕 퇴화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 김영민 산업부장
운동선수는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몸을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생활하는데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에서 뒤처지고 계속 방치하면 선수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스마트폰 등 분야에서 1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톱클래스 선수다. 이런 선수에게 특검의 지나친 압박은 선수생명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물론 특검의 수사가 당장 삼성에 직격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과 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중·장기적인 충격파다. 언론 등을 통해 비춰진 총수의 부정부패 의혹들이 삼성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크고 작은 사업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건만 해도 올 1분기 중 주주총회를 통해 의결될 예정이지만 일부 주주들의 반대로 소송까지 제기돼 난항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특검 수사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삼성전자의 기업 이미지는 추락하고, 손발이 묶인 이 부회장은 옴짝달싹도 못하는 형국이다.

더욱 큰 우려는 이 부회장이 그동안 쌓아온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와 네트워크 마저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신규사업에 진출하거나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을 감안할때 이는 삼성 뿐 아니라 한국경제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기업에 대한 수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언론 등을 통해 각종 의혹이 공개되고, 잦은 소환이나 구속영장 청구로 구설수에 오르게 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가 기업 수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작금의 정경유착 의혹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져봐야 하는 문제다. 삼성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의 압박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 등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전경 /연합

물론 삼성측이 먼저 접근해 최순실 측에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삼성은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 하지만 중차대한 시국에 대통령이나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줬다면 피해자로 봐도 무방하다. 대가성이 있었는지, 압력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정경유착 문제는 당사자 모두에게 죄를 물을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는 게 먼저다. 아직 삼성측이 피의자인지 피해자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고 총수인 이 부회장을 압박하는 것은 삼성은 물론 국내 산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검이 기업 수사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앞으로 특검은 기업 수사에 있어 접근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정황만 가지고 무분별하게 총수 소환, 구속영장 청구 등으로 기업인들을 압박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산업계와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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