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 전원일치 각하·기각이 최선입니다"…국민 분열 막을 담대한 결단을
   
▲ 조우석 주필
존경하는 헌재 재판관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 여덟 명 모두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 지식인·예비역 장성 등 적지 않은 국민들이 헌재에 탄원서를 보내고 있지만, 이 공개편지 역시 신문칼럼이자 독자들과 함께 읽는 탄원서입니다.

편지 보내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운명의 일주일, 이 국면에서 대한민국을 살릴 지혜를 나누고 싶은 마음인데, 지금 제 책상에는 2014년 통진당 해산을 선고한 헌재의 결정문 전문(全文)이 놓여있습니다. 결정문 전체를 수록한 뒤 앞에 해설을 붙인 두툼한 단행본 <국민의 무기>(2015년 조갑제닷컴 펴냄)가 그것입니다.

해설은 당시 통진당 해산 선고 결정문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라고 칭송했는데, 저 역시 같은 판단입니다. 우리헌법 제4조에 명문화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존중과 함께 균형 잡힌 법리가 살아있고, 명문장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헌재가 여론독재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결정문 앞부분의 표현대로 통진당 해산은 "일종의 극약처방"이었습니다. 진보적 민주주의로 포장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석기 류(類)를 우리 헌정이 보호할 수 없음을 선언했고,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점 새삼 감사드립니다. 역사적 선고를 내린 주역이 여러분과, 얼마 전 퇴임한 박한철 소장이라는 게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당시의 주역 여덟 분이 지금 또 한 번의 고비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헌재 재판관 여러분. 여러 분들이 느낄 중압감을 저도 조금은 이해할 듯합니다. 사실 통진당 해산 결정보다 지금 상황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피아(彼我)식별이 용이치 않기 때문인데, 지금은 대한민국이 둘로 쪼개진 사실상의 내전국면입니다. 그래서 언론은 "인용되면 혁명, 기각이면 내전" 소리를 반복하고 있지만, 저는 그런 매체를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건 뒷짐 진 방관자의 목소리가 아닙니까? 사실 조중동과, 산하의 종편들은 언론기관이 아니고 검찰-국회와 함께 이번 사건의 기획세력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은 죄다 압니다.

요즘 언론은 양극단을 배제한 자중을 권유하지만, 이 역시 동의 못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립금지법을 제창했던 현자(賢者) 정치인 솔론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는 "내란이 일어났을 때 어느 편에 가담치 않은 자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하자"고 했을까요?

중립 타령을 하면서 공동체 위기를 외면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참-거짓 사이에서 기계적 중간에 안주하는 건 정치적 사기입니다. 요즘 조중동-종편이 그러한데, 더구나 저들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합니다. 서너 달 전엔 촛불 찬양과 광장민주주의 선동으로 정신없더니 태극기 세력이 커진 지금은 대강 덮고 가자며 딴소리입니다.

   
▲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에서 태극기행동본부 주최로 열린 대통령탄핵 반대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삭발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왜 강일원은 기피신청을 당했나?

존경하는 헌재 재판관 여러분.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해 말 JTBC가 문제의 타블렛PC를 들고 나와 가짜 뉴스로 못된 선동을 시작한 이래 이 나라에는 집단 공포심리가 자리 잡았습니다. 여론독재, 그건 무서웠습니다. 고개 들면 죽는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자, 묻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전체주의 광기이자, 폭민(暴民)정치의 대두였는데 독립적이어야 할 헌재가 그 쓰나미로부터 정말로 자유로웠던가요? 유감입니다. 여러분들은 알게 모르게 백주에 가위 눌린 상황이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왜 여러분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재판을 진행했습니까? 특정 재판관의 퇴임일 맞춰 최종 선고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재판 일정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논리 속에 모두가 허둥댔습니다. 대통령 변호인단의 김평우 변호사는 최근 "처음부터 재판관들이 바이어스(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100% 공감하진 않습니다. 여론독재의 쓰나미에 등 떠밀린 게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그 결과 국회의 소추장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헌재는 충실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재판부가 피청구인 즉 대통령 변호인단에 불리한 재판진행을 해온 것도 사실 아니던가요? 오죽했으면 강일원 재판관이 기피신청을 당했을까요? 그는 진실규명보다 유죄입증이 먼저인 듯했는데, 그런 불공정재판이야말로 어떤 재판관도 해선 안 될 수치스러운 행위가 아니던가요?

   
▲ 지난달 18일 16차 촛불집회에 등장한 이석기 석방주장과 함께 이적단체 범민련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국가혼란 부추긴 세력에 대결단 내리라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 3월13일 이전 최종 선고를 한다는데, 그건 너무 쫓기는 일정이 맞습니다. 고영태 일당과, 소위 안산파를 중심으로 사실관계가 새롭게 드러나면서 사건의 개념 자체가 막 바뀌는 지금 최종선고를 한다는 것부터 무리가 맞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하시려거든 국민이 원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명판결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어떤 것이겠습니까? 재판관 8명 전원일치 각하(却下) 혹은 기각이 최선입니다. 각하는 엉터리 소추를 한 국회에게 공을 다시 넘기는 것이니, 그게 가장 뒤탈 없고 헌재가 중립적 헌법기관으로 존중받는 길입니다. 8명 전원일치 기각 역시 환영합니다. 기각도 '누명 탄핵'을 무효화시키는 적극적 판결이니까요.

어차피 이번 탄핵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과, 국회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권력행위 내지 충돌이라는 게 황성욱 변호사의 최종변론인데, 그게 맞습니다. 반복하지만 8명 전원일치 각하 혹은 기각이야말로,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요구하는 탄핵 판결에 어울리고, 사실관계 판단에도 부합합니다.

존경하는 헌재 재판관 여러분. 통진당 해산을 선고한 헌재의 결정문 뒤엔 이런 대목이 있는데, 제가 특히 좋아합니다. 대한민국 전복을 꾀하는 "대역(大逆)행위"를 한 통진당에 대해 "불사(不赦·용서 못함)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단호한 결론입니다. 그건 당시 안창호·조용호 재판관 두 분이 보충의견 형태로 결정문에 삽입한 명문장입니다.

좋습니다. 지난해 말 이후 6개월 가까운 국가혼란을 부추긴 국회·언론 그리고 검찰에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이성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최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처 받은 국민 모두를 보듬어주는 길입니다.

그게 8명 전원일치 각하 혹은 기각 선고임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누구는 4대4 탄핵 기각을 예측하고, 어느 분은 5대3 승리를 말합니다만, 그렇게 평결(評決) 결과가 쪼개지면 국민 분열을 재촉합니다. 부디 지혜롭고 담대한 판결로 대한민국을 다시 구한 의인(義人) 재판관 여덟 분으로 국민 마음에 오래 기억되시길 바랍니다. 저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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