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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연방제 통일론의 전략적 변화
도그마에 빠진 한국의 친북론자 및 자칭 진보세력, 용도폐기된 정책에 매달려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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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7-03-19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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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시기 강화된 북한의 꼼수, 연방제 통일론의 전략적 변화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집요하게 주장해 왔다. 얼핏 보면, 북한의 통일 정책은 일관성과 연속성을 지닌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이 1960년대 처음 연방제를 제시했을 때부터 중요한 계기 때마다 연방제의 성격에 변화를 주어왔다. 북한이 처음 “연방제 통일방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략을 시작한 것이 1960년 8월 14일이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4 · 19혁명으로 인해 극도의 사회-정치적 혼란시기임을 감안하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혼란을 틈타 생겨난 대남적화 노선의 연장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이후 줄곧 1980년대 말까지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적극적 대남공세를 전개해 왔지만 1990년대에 들어 연방제 성격 자체를 수정하는 변화를 겪는다. 북한의 군사·경제적 대남적화사업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북한은 “1민족 1국가를 기본으로 한 2체제 2정부 유지”를 강조하면서 수세적으로 탈바꿈 했지만, 정작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북정책이 바뀌는 한국 정부의 성격으로 봤을 땐 결코 일관성이 없다고만 볼 수 없는 웃지 못 할 아이러니가 만들어진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국내 상황과 국제정세 및 남한의 정세변화에 따라 공세적, 때로는 수세적으로 성격과 내용을 바꾸어 제시되어왔던 것이다. 본론에서는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의 의도와 목적을 올바로 살펴봄으로 탈냉전시기에 접어들어 자칫 대한민국에 흡수 될 수도 있는 북한이 그토록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지향하는 의도를 몇 가지 제시하도록 하겠다.

   
▲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집요하게 주장해 왔다./사진=연합뉴스


1. 위기관리와 체제유지에 활용

냉전시기 북한의 일차적 국가목표는 대남 혁명이었고, 이에 기초해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 건설 및 대내외 정책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냉전시기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스스로 경제우위(1960~1970년대)에 기초하여 체제우위를 자신하는 시기에 있어서는 혁명 전략에 기초해서 추진하였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한에 대해 지배적인 지위를 확보하거나 최소한 동등한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는 분명 깔려 있었다. 

북한이 1970년대 들어 간헐적이나마 남북대화에 응한 것은 대화를 통해 합의를 추구하고 합의 사항의 성실한 이행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통한 평화 이미지 부각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면하고, 대화를 이용하여 북한 주도하에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권세습이나 경제수준이 크게 낙후된 불리한 시기에는 남한에 흡수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연방전략에 더욱 집착하였던 것이다.1)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남조선혁명이라는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수행하지 못했을 뿐더러,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경제난은 북한을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까지 만들었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그동안 ‘미제’로 규정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아왔던 미국과의 관계계선을 최우선 국가목표로 설정한 반면, 남한에 대해서 오히려 관계 개선 대신 관계 악화를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북한은 남한붕괴를 통해 북한식 통일을 고수하던 공세적 정책을 수정, 남한 위협의 최소화를 통한 체제유지라는 수세적 정책을 선택 한 것이다. 북한은 공식적 차원에서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고수하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연방의 성격이 남북평화공존을 기초로 하는 ‘국가연합제’ 방식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남북연합단계의 과도기적 조정기간을 거쳐 남북한 평화공존체제의 장기유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2. 두 체제의 공존 · 공영강조

1980년대 말 이후 북한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체제와해, 가중되는 경제난 등으로 대외적 환경과 내부적 환경의 악화 속에서 남북공존 및 평화를 강조해 왔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탈냉전기 북한은 남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점차 높은 비중으로 인정하였으며, 이 의미는 외부의 정보가 차단된 북한 사회일지라도 지배계층이 대중(인민)들을 상대함에 있어 남한사회의 발전상을 숨기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의미이다.2)

처음 연방제를 주장하던 1960년대 북한의 자신감은 탈냉전기에 접어들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에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상실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1980년 10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통일 연방 국가를 구성하자는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안함으로써, 북한이 남북한간에 존재하는 격차를 인정한다는 인상을 남한사회에 주며 오늘날까지도 자칭 진보(?)세력들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한 속임수를 쓴 것이 이때부터라고 봐야한다.

1960~70년대에 통일로 가는 과도적 체제로서 북한이 제안했던 연방제 통일방안과는 달리 1990년대 이후에는 남북한의 현존 체제유지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한은 1991년 김일성 신년사를 통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김일성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제도에 의한 제도통일론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의 분열을 끊임없이 지속시키며 결국은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하고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만드는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순탄하게 풀어나가도록 후대들에게 맡겨도 된다”고 말함으로써 실제는 연방제에 의한 완전한 통일을 포기하고 현존하는 두 체제의 잠정적인 유지를 주장했다.3)

   
▲ 북한의 군사·경제적 대남적화사업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북한은 “1민족 1국가를 기본으로 한 2체제 2정부 유지”를 강조하면서 수세적으로 탈바꿈 했다./사진=연합뉴스


당시 북한이 당면한 대내외 환경요인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현존체제의 유지가 가장 절박한 과제로 남게 하였다. 무엇보다 대내외적인 환경은 북한으로 하여금 ‘하나의 조선’이나 ‘남조선혁명론’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북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북방 3각 관계는 냉전시대의 군사안보적 동맹의 성격을 이미 상실한 상황이었고, 러시아와 중국은 대한민국과 수교를 통하여 북한의 의도와 상관없이 개방경제를 시행했음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생존전략은 현 체제의 유지와 남북한 평화공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상황에서 남한에서 진행된 대북정책이 “햇볕정책” 이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 같은 북한의 현실인식은 1990년대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수용하고 1990년대에 들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위험성에 대해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으며 두 개의 상이한 사상과 제도의 공존을 보장하고 있다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제도통일을 후대에 위임함으로써 남북간의 통일은 과도체제의 수준을 넘어서 공존이 가능한 통일된 연방제 틀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북한의 외교적 제스처는 역으로 북한 사회주의 보호유지를 위한 방파제 역할에 상당히 기여할 정도로 탄력성을 지니고 있는 것 역시도 인정해야 한다.

3.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

80년대 말의 위기의식은 김일성에게 “제도를 단일화 하려는 것은 그 실현방도가 어떠하든지 상대방을 먹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이것을 강요하려 한다면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키고 나아가서 충돌과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재난까지 빚어낼 것이다”4)

라고 말했다. 이것은 흡수통일에 대한 극도의 경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제도통일방식”과 “연방제 통일방식”을 구별하고 있다. 북한 측은 공존의 원칙을 제시하며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지 않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탈냉전기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80년대 들어와서 주장한 1민족 2제도 원칙의 계승이라고 주장한다. 

고려연방제를 쉽게 표현하면 남북의 지역자치정부에 부여된 권한을 ‘점차적인’ 방식으로 중앙정부로 이전하는 단계를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라는 표현과 개념이 처음 등장하였다. 이것은 독일 통일을 지켜본 북한 당국자들이 북한을 결코 제2의 동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과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통일방안의 수정을 시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김일성이 언급한 제도통일은 곧 흡수통일이며, ‘승공통일’로서 남한주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과 동의어라고 북한 당국자들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명백히 확인한 바와 같이 명실상부한 민주원칙이 적용됨으로써 자유선거가 실시된다는 것을 상정할 때 ‘제도통일’은 필시 남한주도하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끝날 것은 명백하다는 것을 김일성시기부터 오늘날의 김정은 정권까지 북한수뇌부들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 탈냉전시기에 접어들어 자칫 대한민국에 흡수 될 수도 있는 북한이 그토록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지향하는 의도는 따로 있다./사진=연합뉴스

결론

1980년대 말까지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적극적 대남 공세를 전개했지만, 1989년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1990년 10월 독일통일에 이어 1991년 12월 구소련마저 해체되자 대내적으로 계속되는 자연재해와 경제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체제의 붕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 북한정권에게 있어 이 시기는 최대의 체제위기 상황이었으며 국내외 환경이 가장 심하게 변화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대내외 환경악화로 위기감을 느껴 사실상 사상과 제도가 하나로 된 정치적 완전통일을 포기했거나 또는 상당기간 연기, 회피함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이 말한 ‘후세대들’ 즉 다음세대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 세대를 거치고 오늘날 북한의 정치세대에 관한 한, 정치적 통일의 실현보다는 명분상 과도적인 연방형식의 통일체제에 전략적 포석을 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는 종래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전략적 궤도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시킴은 물론, 북한이 사실상 사상과 제도가 하나로 되는 완전한 정치적 통일로서의 ‘통일 민주공화국’ 수립을 포기하고 오직 흡수통일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흡수통일방지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체제위기를 느낀 김일성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주장과 이론은 김정일 세대를 거쳐 현재까지 북한이 처한 상황에서 체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면 연방제의 기본적인 틀 안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며 지역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는 범위라고 주장하며 남한의 통일방안(?)에 대처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북한 연방제 통일방안의 변화는 체제수호적 공존전략으로 변할 수밖에 없으며, 당분간 이 노선을 핵병진노선과 더불어 대남전략을 지속시킬 것이다.

문제는 “연방제”의 도그마에 빠진 남한사회의 친북론자 및 자칭 진보세력들의 대북론 이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론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탈냉전기가 지나고 2017년 오늘날 완벽하게 용도 폐기된 정책임에는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사회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자유주의 진영에서 입이 마르도록 주장했던 개혁개방의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개혁개방은 곧 “시장의 형성”을 의미하며, 북한의 체제 모순적 핵병진 노선이 시장의 형성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이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남과북의 문제는 정치 · 행정적 문제가 아닌 경제시스템의 전반적인 정비가 우선 되어야 한다. /임종화 경기대 무역학과 객원교수


1) 백학순, 『남북한 통일 외교의 구조와 전략』, (세종연구소, 1997)

2) 이종석, 『현대 북한의 이해』, (서울: 역사비평사, 2000) p.385

3) 얼핏 들으면 유화적인 외교태도로 보이지만, 이것은 북한의 참담한 실정을 스스로 깨닫고 체제유지에 방점을 찍고 정권을 지속시키려는 속임수다. 또한 이러한 이론은 남한사회의 친북론자들에게 연방제통일의 환상을 도그마(Dogmatic) 적으로 신봉하게 만든 시발점이다.

4) 김일성 연설 : 1989년 9월 8일 『국가수립 41주년 경축보고대회』 ‘남북공존의 원칙’


(이 글은 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통진당 해산 판결을 통해 본 反대한민국 세력의 정체 - ‘진보적 민주주의와 연방제 통일론의 위헌성’』 제 3차 연속세미나에서 임종화 경기대 무역학과 객원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임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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