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도전정신 시장경제 '번영의 역사' 주인공…반기업정서 돌아봐야
   
▲ 황정민 자유경제원 연구원
너도나도 정주영이 되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배불러서 밥을 남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대한민국이다. 날 유혹하는 수많은 음식을 뿌리치고 지방을 태워야한다는 아우성이 가득한 대한민국이다. 아무리 빈부격차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반(反)시장주의자들이 만들어내는 말이 유행해도, 한반도 역사상 지금만큼 배부른 소리를 마음껏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우린 풍요로워졌다. 먹고 살 만 해졌다. 불과 70년 만에 이뤄낸 결과다. 같은 조건(혹은 더 나은 조건)에서 출발한 북한은 못했지만, 우린 해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중심엔 시장경제가 있다. 그리고 시장경제의 중심엔 기업이, 기업의 중심엔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위대한 기업가가 있다. 

대한민국을 모르는 외국인은 있어도 현대그룹을 모르는 외국인은 없다. 현대 마크를 단 자동차들이 전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얼마 전 방문했던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치민에서도 번화가에 우뚝 솟아있는 현대그룹 전광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늘에서 어느 날 뚝딱 떨어진 결과가 아니다. 쌀집 알바에서 시작해 현대를 글로벌기업의 반열에까지 올려놓은 어느 기업인의 노력과 기업가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3월 21일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거 16주기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한민국에서 이웃나라에게 몇 푼 쥐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성장하게 된, 그 놀라운 역사적 현장에 함께한 시대의 거인이다. 그는 건축업부터 조선업, 자동차산업까지 한국 경제사에 한 획도 아닌 ‘여러 획’을 긋는데 성공했다.

어려움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주영이 오늘날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비단 그의 놀라운 업적들 때문만은 아니다. 삶을 대한 그의 태도도 값지다. 단언컨대, 그는 우파적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 인물이다. 이데올로기를 학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유DNA를 타고났음에 틀림없다.

우파는 오로지 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 삶에 찾아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도 내 손에 달려있다고 여긴다. “누구 때문에, 이 더러운 사회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남에게 내 고통과 실패의 원인을 뒤집어씌우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본다. 삶은 ‘자기선택 자기책임‘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정주영에게 주어진 조건은 이랬다. 가난한 농가의 부모님, 8남매의 장남, 소학교 졸업장, 농부로 자랐으면 하는 아버지의 바람. 불평불만만으로 가득차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려도 충분할 만큼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원하는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한 과감한 선택에 노력까지 더한다. 3차례나 무일푼 가출을 한다. 공사장 막노동, 엿 공장, 쌀가게 등을 돌아다녔다.

쌀가게 주인에게 인정받아 쌀가게 사장이 되기도 한다. 아현동에서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31살이 되던 해, 마침내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한다. 오늘날 굴지의 글로벌기업, ‘현대그룹’의 씨앗을 심는데 성공한 순간이다. 이렇듯 정주영은 주어진 조건에 굴하지 않고, 기어코 자기가 살고자하는 삶의 궤적을 개척하고 만들어나갔다.

한 연설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고통이나 어려움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살만한 조건의 대한민국을 헬(hell)조선이라며 탓하고, 흙수저라며 부모 탓하기에 여념 없는 청년들이 왜 생각을 고쳐먹어야하는지 정주영의 인생이 증명한다.

   
▲ 더 많은 청년들이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같은 기업가가 되고자하는 대한민국이 도래하길 바란다./사진=미디어펜


성리학적 ‘사농공상’ 직업관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기업인으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정주영이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엄청나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 ‘정주영’하면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미지는 ‘소떼 몰고 방북한 사람’이었다. 정주영 회장에게 느꼈던 그 이상의 감동은 없었다. 나도 정주영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주영뿐만 아니라 그 어떤 기업인에 대해서도 ‘대단하다’는 감정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사기업에 들어가 나만의 창의력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다. 사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별 볼일 없다고 여겼다. 그보다는 공무원이 되어 공익을 위해 일하거나, 하다못해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를 더 높게 쳐줬다. 한반도에 오랜 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잘못된 인식수준의 결과다.

한반도에서 기업인은 우대 받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조선에서 그랬듯, 한국에서도 여전히 천대받는 존재다. 성리학적 ‘사농공상’의 직업관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상인은 시정잡배나 다름없었다. 사익을 탐하고 이윤을 쫓는 상인의 행위는 고결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망했고, 시장경제 대한민국은 번영의 역사를 썼다. 더 이상 우리는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아야 하는 조선인이 아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한 근대 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그럼에도 우리 의식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성리학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리학은 상인을 천하다 했지만, 시장경제에서 상인은 핵심적 존재다. 기업이 곧 시장이므로, 기업가 역시 시장경제의 줄기다. 그럼에도 교과서에는 기업가정신이 무엇이고, 기업인이 왜 박수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지난 검인정 교과서에도 정주영 회장은 ‘통일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한 최초의 기업인’이라는 묘사가 전부였다. 한국에서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고 싶으면 기업인으로서의 업적보다, 북한과 통일에 무언가 기여를 해야만 하는 실정인 것이다.

그 결과 청년들 머릿속엔 창의력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인보다 선비, 즉 공무원이 더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이 지배한다. 사기업 취업보다 공기업에 입사를 더 희망한다. 자본을 만들어내는 직업보다 남이 세금으로 낸 돈을 어떻게 나눌까 궁리하는 직업이 더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코 공무원들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사농공상‘ 직업관과 맞아떨어지는 좌익의 기업관

어떻게 이런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지속되고 있을까? 우리 의식 속에 짙게 남아있는 성리학적 사농공상 직업관과 기업을 증오하는 좌익의 시각이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좌익에게 자본가, 즉 기업인은 타도의 대상이다. 기업은 노동자의 등골을 빼먹는 노동착취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문어발 경영’, ‘승자독식’, ‘정경유착’, ‘갑과 을’ 등의 감성적 구호로 대중의 분노를 유도한다.

이러한 ‘성리학+좌익’의 사고가 언론과 교육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하여 시장경제의 주축인 기업가는 한반도에서 여전히 ‘잡배’로 남아있다. 국가의 어려운 시기마다 마녀사냥 당하는 표적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무리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의 파이를 키워도 포승줄에 묶이고, 광장 한복판에서 조롱당하고, 각종 사회공헌을 강요받고, 국회청문회에선 선비들에게 꾸지람을 들어야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선 아무리 정주영 회장의 업적을 평가하고 기려도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다. 기업과 기업인을 천시하는 국민들의 사고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한다.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더 이상 이황, 신사임당, 김구 위인전을 볼게 아니라 수많은 기업가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자라나야 한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하는 선진화된 교과서도 만들어지고,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더 많은 청년들이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같은 기업가가 되고자하는 대한민국이 도래하길 바란다. 기업과 시장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몇몇 사람들의 노력이 언젠간 그러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황정민 자유경제원 연구원

   
▲ 성리학은 상인을 천하다 했지만, 시장경제에서 상인은 핵심적 존재다. 기업이 곧 시장이므로 기업가 역시 시장경제의 줄기다. 정주영은 한국 시장경제 번영의 주인공이었다./사진=연합뉴스



(이 글은 20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정주영 서거16주기 세미나-청년이 본 기업가, 정주영’에서 황정민 자유경제원 연구원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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