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속 나만이 아닌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심리…보통사람이 대우 받는 사회
   
▲ 이석원 언론인
스웨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잘난 척'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겸손하다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잘난 척'도 하지 않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도 없다.

이 묘한 '느낌'이 현실감을 입은 것은 얼마 전 스웨덴 친구 2명과 함께 얘기를 나눴을 때였다. 27세의 게임 프로그래머인 얀손과 34세의 대학원생 안톤은 스웨덴 프로 축구의 열성적인 팬이다. 두 사람은 각각 IFK 노르셰핑과 IFK 예테보리의 팬이다. 노르셰핑과 예테보리는 지난 시즌 각각 리그 3위와 4위를 차지했지만, 스웨덴 프로축구 1부 리그인 알스벤스칸(Allsvenskan)에서 역대 14회와 13회를 우승한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그 날은 마침 리그 개막 며칠 후인지라 두 사람은 축구 얘기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상대 응원팀의 단점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얘기하는데, 자기 팀의 '자랑질'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자기 팀을 비판해도 이에 대해 적극적인 응대나 반론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들 얘기가 좀 이상하다"며 의문을 제기하자 그들은 입을 모아 "우리는 그래"라며 웃었다.

스톡홀름 14개 섬 중 '박물관의 섬'이라고 불리는 유르고덴에는 말 그대로 꽤 많은 박물관이 있다. 원래는 왕의 사냥터였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섬 입구에 있는 북방민족 박물관을 비롯해 어린이 박물관인 유니바켄, 세계 최초의 야외 민속 박물관인 스칸센, 17세기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던 바사호를 전시한 바사 박물관 등 스톡홀름을 대표하는 박물관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중 가장 볼품없는 박물관이 하나 있는데 아바 박물관이다. 아바는 누구나 다 아는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4인조 팝 뮤지션이다. 비틀즈에 버금가는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였고, 최근에는 뮤지컬 '맘마미아' 때문에 요즘 세대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웨덴 대중문화의 보석이다.

   
▲ 웨덴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과 심한 논쟁을 벌이는 일이 없다. 이를 두고 스웨덴 사람들은 "서로 잘난 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한다. /사진=이석원

그런데 이 아바 박물관이 건립되던 당시 스톡홀름 시민들은 반대했다. 스웨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바를 사랑하지만 왜 굳이 살아있는 사람의 박물관을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9년 처음 건립하려던 계획은 스톡홀름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4년 후인 2013년 5월에 가서야 박물관이 세워졌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 박물관에 대해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얘기했고, 실제 스웨덴 사람들이 아바 박물관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이상한 스웨덴 사람들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모든 선수에 대해 꿰고 있고, 그룹 코리아나로도 한없는 자랑거리였던 우리와는 뭐가 다르다. 그런데 이런 스웨덴 사람들의 이상한 성격(?)에는 배어있는 정서가 있다. '얀테의 법칙(Jantelagen)'이라는 것이다.

얀테는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제가 1933년에 발표한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이상한 게 있다.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곳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생기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것은 잘난 게 아니라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살려면 지켜야 하는 10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게 얀테의 법칙이다.

1. You a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You are not to think you are as good as us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3. You are not to think you are smart than us.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You are not to convince yourself that you are better than us.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 확신하지 마라.

5. You are not to think you know more than us.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You are not to think you are more important than us.
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You are not to think you are good at anything.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You are not to laugh at us.
당신은 남들을 비웃지 마라.

9. You are not to think anyone cares about you.
누구도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10. You are not to think you can teach us anything.
당신이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 스톡홀름 유르고덴섬에 있는 아바 박물관.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이 박물관이 처음 건립되려고 할 때 사람들은 반대했다. 그들이 잘난 것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나 있는 거지 박물관까지 만들 일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진=이석원

이 얀테의 법칙은 비단 스웨덴에서만 통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스웨덴을 비롯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이른바 노르딕 국가 모두에서 통용될 뿐 아니라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발틱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도 어느 정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게다가 소설이 발표된 1933년에는 10개의 조항처럼 정리가 된 것일 뿐 이미 오래전 북유럽 국가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해준 이야기가 그 바탕이 되고 있다.

굳이 남들에게 겸손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잘난 양 과장하지도 말라는 게 얀테의 법칙의 기본 정서라고 북유럽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이런 정서는 '경쟁'이라는 구조에서 색다름을 드러낸다. 반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다른 친구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엄청난 매상을 위해 옆 가게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경쟁은 하지만 나만 대단해지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남들보다 조금 낫기는 해도 남들도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심리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런 스웨덴 사람들의 심리는 기업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누구보다도 이런 '얀테의 법칙'의 범주에 속한 스웨덴의 또 다른 위대한 존재가 있다. 라틴어 'Esse non Vederi(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을 가문의 모토로 삼고 있는 스웨덴 최대의 재벌가 발렌베리 가문이다. 발렌베리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언급하기로 한다. /이석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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