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가능성 거의 없어…실재하지 않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
   
▲ 이석원 언론인
유럽 연합, 즉 EU가 만들어지는 데는 적어도 3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1950년 세계 제2차 대전의 최대 피해국인 프랑스가 '하나의 유럽'을 기치로 통합된 유럽 건설을 외치기 시작한 이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주도로 유럽 철강석탄공동체(ECSC)가 출범하고 다시 5년 후인 1957년 3월 2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EU의 실질적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출범한 것이 60년 전 일이다. 그리고 1993년 EU가 탄생했으니 설립에 30여 년, 유지에 30여 년이 소요된 셈이다.

그런데 지난 해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이후 전 유럽은 EU 잔류와 EU 탈퇴 문제를 놓고 시끌벅적하다. 그 뒤로 이어진 각 국의 대통령 선거나 총선거에서 EU 탈퇴는 핵심 화제가 됐고, 실제 거의 모든 나라에서 EU 탈퇴를 주장하는 정당 또는 후보들이 나왔고, 또 어느 정도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EU 해체의 실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유럽 현지 각 국의 '민심'들은 "그렇게 높지 않다"거나 "말 뿐이지 더 이상 그렇게 할 분위기가 아니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그렇다면 국내에 전해져오던 '브렉시트' 이후 '덱시트(덴마크의 EU 탈퇴)'니 EU 탈퇴 공약 정당들의 득세니 하는 뉴스들은 뭘까?

실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체가 없거나 미미한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말이 올바를지 모른다. 아니, 사실 전 유럽을 강타했던 태풍일 수는 있지만 큰 상흔을 남기지 않고 소멸한 '열대성 저기압'이었는지도.

   
▲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가 쿵스트래드고덴 공원에 모여 떠들썩한 놀이를 하고 있는 스웨덴 젊은이들. 이들은 저마다 다른 EU 국가로의 취업을 기대하고 있다. /사진=이석원

지난 3월 15일 네덜란드 총선에서 'EU 탈퇴'와 '난민 수용 반대'를 외쳤던 극우자유당(PVV)도 총선에 패한 것이 시작이다. 기존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에 이어 원내 2위를 차지한 것 정도가 유의미한 성과다. 또 오는 6월 3일 총선을 치를 스페인도 EU 탈퇴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브렉시트의 여파 중 하나인 지브롤터 영유권이 걸리면서 영국과 스페인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 보니 영국의 EU 탈퇴를 부정적으로 보는 민심이 급등하는 것이다.

9월 총선이 있는 독일의 경우 EU 탈퇴를 전면에 내건 독일대안당이 한 동안 인기를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독일 총선은 메르켈의 기민당과 마틴 슐츠의 사민당 싸움이 될 판이다. 실제 독일대안당의 최고 15%까지 지지율이 올랐었지만 최근 8%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내년 2월 총선인 이탈리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도 EU 탈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로 탈퇴'를 주장하는 것이다. 즉 스웨덴이나 덴마크, 체코와 크로아티아처럼 EU의 울타리에는 있되, 돈은 지들 돈으로 쓰고 싶다는 것. 하지만 이탈리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뭐 물론 오스트리아 하이더의 자유당(FP)이나 핀란드의 '진정한 핀란드인(TF)', 그리고 덴마크 인민당(DP), 폴란드의 '법과정의당(LJP)' 등도 EU 탈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EU 탈퇴 주장을 접었거나 주장을 관철하기에는 세력이 미미한 게 사실이다.

유럽 각 국의 민심이 변한 데는 영국의 처지가 가장 주효했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영국의 처지를 보니 EU 탈퇴가 잘 한 결정이라고 장담할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브렉시트에 반대표를 많이 던졌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공포에 가까운 실업 재난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물론 200만 명에 이르는 영국에 들어온 EU 젊은이들의 처지도 짝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젊은이들이 나간 자리를 다른 EU국에서 일하고 있는 300만 명의 영국 젊은이들로 채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영국과 일자리 교류가 많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는 물론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이 빠져나간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된 스페인 등 '잘 사는' EU 국가 젊은이들에게도 위기로 다가온 것이다.

봄볕이 제법 따가워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쿵스트래드고덴이라는 공원에 모인 젊은이들은 "우리는 스웨덴 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일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곧 대학을 마치고 독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안톤 야콥손(22)은 "난민들과 이민자들까지 많이 들어온 스웨덴에서 일 자리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면서 "그래도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으로 일을 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은 스웨덴 젊은이들에게는 돌파구다"고 얘기한다.

   
▲ 파리의 고서점 세일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만난 롤랑과 기네온 커플은 최근 영국 런던에서의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귀국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이석원

최근 잇단 테러와 그 와중의 대통령 선거까지 치른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EU 탈퇴에 대해 오히려 더 부정적이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부근 영어 서적 전문 서점인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만난 롤랑(28)과 기네온(30) 커플은 "지난달까지 런던에서 희곡을 쓰면서 생활해왔는데, 브렉시트 때문에 이제 프랑스로 되돌아와야 한다"면서 "그들은 멍청한 결정을 했고, 우리가 아는 웨스트 엔드(런던의 대표적인 뮤지컬 극장가)의 젊은이들은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기성세대를 원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젊은이들 말고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어떨까?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에서 유학 중인 강준일(가명. 26) 씨는 "사실 덴마크는 다른 유럽 국가로 가기 위한 발판이다. 여기서 학업을 마친 후 오스트리아나 독일로 취업을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만약 EU가 해체된다면 강 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민선(29) 씨는 내년 2월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독일에 있는 한국 기업의 현지 법인으로 취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것은 스웨덴과 독일이 EU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EU가 해체된다면 김 씨는 독일의 한국 기업 현지 법인으로 바로 취업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씨도, 김 씨가 취업을 예정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독일 법인도 "그럴 일은 없다"고 얘기한다.

EU 국가 간 취업이나 유학의 문은 비단 EU 국가의 젊은이들에게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취업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청년 실업이 더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최근 우리 젊은이들의 유럽으로의 진출은 '로망'을 넘어서 '현실'이 돼 가고 있다. EU 국가들의 국가 이익에 앞서 EU의 존치는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또 다른 돌파구로써 유의미할 수도 있다. /이석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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