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중요 의사 결정 공무원 위축 가능성 커"
재계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보호한 합리적 판단"
[미디어펜=홍샛별 기자]"국가 전체 이익을 위한 결단이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 재계와 공직사회에서는 국가 전체 이익을 위한 결단이라는 주장이 결국 묵살, 왜곡됐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홍완선 전 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넣은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각각 2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문 전 장관에겐 2015년 6월 조모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에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한 점 등을 인정,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홍 전 본부장에게는 투자위원회 개최 전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수치 조작을 지시하고 일부 위원에게 합병 찬성을 권유함으로써 기금에 손해를 끼쳤다며 업무상 배임을 인정했다.   

즉 1대 0.35라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국민연금측에 불리했음에도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의 개별 의결권 행사의 독립권을 침해해 외압을 행사했고, 이 과정에서 홍 전 본부장 역시 기금 수익성을 높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공직사회에서는 "중요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공무원들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직사회 적폐로 거론되는 '복지부동', '무사안일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국가 전체 이익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문 전 장관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문 전 장관은 삼성 합병에 찬성하는게 국가 경제뿐 아니라 국민연금 운용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이 삼성합병을 제지하고 나섰다면 외국자본이 국내 간판기업 '삼성'의 경영권을 쥐고 흔드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어서다.

삼성물산 3대 주주였던 미국 헤지펀드사 엘리엇은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를 평가 절하했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국민연금이 삼성과 엘리엇 둘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고민할 때 재계와 여론 모두 외국계 투기 자본으로부터 '삼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연금이 '반대' 표를 던질 경우 심각한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단기 수익에 치중하는 헤지펀드의 특성상 투자보다는 배당 요구, 자사주 소각 등으로 제 배 불리기만 급급할 것으로 예측되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판결 전까지만 해도 문 전 장관의 찬성 요구가 통상적 권한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법원이 문 전 장관의 행위를 '직권남용'으로 판단함에 따라 향후 기업 관련 의사 결정에서 국민연금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국내 대기업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에 앞으로 비슷한 합병 건이나 중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일이 많다"며 "이번 법원이 결정으로 합리적 결정마저 주저하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측은 해당 판결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삼성은 그동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 이 부회장이 이득을 얻은 일도 없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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