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작년 3월 북한에서 체제전복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법정선고 받은 후 1년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오토 웜비어(22)가 19일(현지시간) 미국으로의 송환 6일만에 사망함에 따라 북미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바닥으로 치닫게 됐다.

의식 불명으로 장기간 억류되었던 미국 시민이 송환 일주일도 안 돼 사망하면서 미국 내 대북 여론은 악화일로다. CNN방송은 웜비어 사망을 전하며 "아주 슬픈 뉴스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할지 주목된다"고 보도했고, 소식을 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북한을 "잔혹한 정권(brutal regime)"이라고 규탄했다.

우리 정부도 미국의 악화된 대북여론에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조전을 통해 "북한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럽다"며 "북한은 억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과 미국 시민들을 속히 돌려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분간 북미 관계가 더욱 냉각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는 가운데, 장기적으로는 북한에서의 웜비어 가혹행위 규명 및 미국에 억류된 나머지 미국 시민권자들에 대한 송환을 논의하기 위해 북미간 대화가 물밑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당장 미국 영사업무를 대행하는 주 북한 스웨덴 대사가 억류되어있는 미국 시민권자 3명(김동철·김상덕·김학송씨)에 대해 정기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웜비어 송환의 발단은 미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였다. 미 정부는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송환 움직임에 착수해 지난달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노르웨이 오슬로로 보내 북한 측과 첫 접촉을 했다.

이후 북한은 지난 6일 뉴욕에서 윤 특별대표를 통해 미국 측에 웜비어를 데려가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12일 북한 평양을 전격 방문한 윤 특별대표의 석방 요구에 하루 만인 13일 웜비어를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북한은 이에 대해 표면적으로 "웜비어를 인도주의 차원에서 석방했다"고 밝혔으나 북미간 대화를 원한다는 의도에서 웜비어 송환에 동의했다고도 보인다.

다만 북한은 애초에 웜비어의 의식불명 상태를 미국에 숨기고 있었고 가혹행위를 가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힘든 실정이다.

관건은 웜비어의 사인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 웜비어의 사망 소식을 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북한을 "잔혹한 정권(brutal regime)"이라고 규탄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혼수상태로 들것에 실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대 병원에 도착한 웜비어에 대해 병원 의료진은 15일(현지시간) "광범위한 뇌조직 손상으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은 웜비어가 지난해 3월 재판 후 식중독인 '보톨리누스 중독증'에 걸려 수면제를 복용했다가 혼수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으나, 신시내티대 의료진은 "북한 주장에 대한 관련 증거가 없다. 웜비어에게서 발견된 뇌 손상은 일정한 혈류 공급이 중단된 심폐정지 상태에서 뇌조직이 죽을 때 관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지난 15일 '웜비어가 구금 중에 잔혹한 구타를 당했다'는 미 고위 관료의 말을 보도하면서 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했지만, 신시내티대 의료진은 "북한의 웜비어에 대한 가혹행위를 뒷받침할 만한 신체적 외상이나 골절의 흔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북 여론은 "북한의 끔찍한 고문과 학대로 아들이 숨졌다"고 전한 웜비어 가족에 대한 집중 조명으로 들끓고 있다. 셀던 화이트하우스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 전역에서 웜비어 가족을 향한 애도의 물결이 일 것"이라며 대북 제재 강화를 촉구했다.

미 정치권에선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 발동을 촉구하면서 트럼프 정부가 대북정책 수립 시 인권 사항을 반영하고 북한과 관련한 대중국 압박 수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지가 더욱 좁아진 가운데, 당분간은 경색된 북미 관계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오는 29~30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웜비어 사망 소식과 관련해 양국간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례적인 '사망 위로전' 전문을 밝히면서 "대통령의 진심을 웜비어 가족들과 미 국민들에게 보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해야 될 일"이라며 "웜비어 사망과 북한과의 대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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