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불황 속에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되고 심지어 자기자신을 버리기까지 하는 노숙인들은 심리적·경제적인 면에서 누구보다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우울증으로 건강을 해치는 이는 물론이고 사업 실패로 생계를 꾸리지 못해 거리로 나앉은 이, 실패 후 대인기피증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 등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숙인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에 미디어펜은 재기에 성공해 반전의 삶을 살고 있는 노숙인들의 사례와 이들의 걱정을 덜어준 정부·지자체 지원정책을 상세히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노숙인들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를 통해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자립의 의지를 다짐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미디어펜 연중기획-아름다운 동행]- "더불어 사는 세상 함께 만들어요"

[노숙인⑫]"절망이었던 곳이 희망으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절망에서 희망으로 털고 일어나야 한다. 노숙인 누구나 번뜩 머릿 속에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털고 일어나야 사회에서 도움을 줄 수 있고 본인이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상태 그대로는 도움 받을 수 없다."

한때 극심한 알코올 중독자로서 노숙인 생활을 4년간 했다가 회복 후 재기에 성공해 현재 노숙인시설에서 일자리·신용회복 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희남 씨(52)의 한마디다.

이희남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독 증세를 빠져나와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는 열쇠로 누군가와의 진솔하고 솔직한 대화와 이에 대한 긍정심리를 들었다.

"술 때문에 길에 누워계시는 분들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분들에게는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한 그 순간을 진솔하게 같이 얘기 나누고 이를 이해해주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에 대한 긍정심리도 그래야 나타날 것 같다."

이씨는 노숙인 시절 서울 곳곳을 헤매고 다니면서 극심한 알코올 의존증을 보였다. 맨발로 다니면서도 발바닥이 갈라지고 터진지 몰랐고 과거 동대문에서 일했던 기억들을 송두리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119 응급구조대에 실려 국립의료원에 입원은 했지만 건강이 회복된 뒤에도 어디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씨는 병원 병실에서도 악몽 가운데 안정제를 맞아가며 밤에 간신히 잠들기도 했다.

   
▲ 이희남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지다. 자포자기한 분들도 많지만 자립의 의지가 있는 분들은 다들 열심히 한다. 그게 자립이고 자활"이라고 밝혔다.


이씨가 자신에 대한 온갖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았던 순간은 갑작스레 다가왔다.

병원 퇴원 후 동대문구청 직원이 알려준 청량리 노숙인시설 '가나안쉼터'에 들어섰을 때, 사무실 직원(목사 사모)이 "이제부터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이씨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라졌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씨의 쉼터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씨가 2011년부터 직원으로 일해온 가나안쉼터는 도시락 배달 등 저소득층 지원사업과 노숙인 아웃리치·자활 희망근로·인문학강좌·무료숙소·무료급식, 개인파산 및 면책지원·저축사업 등에 힘쓰는 기독교 노숙인시설이다.

서울시 일자리 찾기 프로젝트와 연계해 노숙인 등 취업취약계층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활근로를 알선하면서, 하루 평균 1000여명에게 무료급식을 지원하고 매일 200명이 쉼터 숙소에서 잠을 청한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이 가나안쉼터의 표어이기도 하다.

일자리·신용회복 담당으로 일하는 이씨는 "더 어려운 '죽음 단계'까지 갔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해한다"며 노숙인들의 속내를 듣고,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이 많으니 같이 살아갑시다"라며 이들을 북돋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 가나안쉼터 직원으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이희남씨(좌측)와 가나안교회 김도진 담임목사.
 

주거, 건강관리, 신용회복, 자존감회복과 가족회복, 사회적 관계성 등 노숙인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와 관련해 이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도박-채무관계-알코올 등 개인마다 다른 문제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일자리 추천이 능사가 아니다.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최우선인 분들이 많이 실패한다. 급여만 타면 그걸로 끝이다. 자기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고 일부터 하게 되면 급여를 받는 순간부터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입소 상담하는 분들도 그렇고 자신의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쉬운 건 아니다. 이를 극복해 자활하는 분들이 적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야 단계를 밟아 돈을 모으게 되고 나중에 사회인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또한 이씨는 노숙인을 찾아가는 아웃리치(거리상담)의 관건으로 편안하게 찾아가 자주 얘기를 듣고 처해있는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서로 이름도 알아가고 친근감 있게 대하다 보면 나중에 그분들이 쉼터에 스스럼없이 찾아오게 된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어떤 획기적인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저 사람과 내가 '늘 보는 사이'가 됐을 때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20년 뒤의 자기 모습에 대해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기쁘게 살아갈 것 같다"며 "세상이 아무리 부요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분들에게 내 마음이 잘 전달되고 각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지다. 자포자기한 분들도 많지만 자립의 의지가 있는 분들은 다들 열심히 한다. 그게 자립이고 자활"이라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