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갑을오토텍·현대중 사례 '경영난' 고려 주목
[미디어펜=최주영 기자]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낸 1조원대 ‘통상임금’ 소송 1심 산고가 31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가운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노사간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재판부가 신의칙을 토대로 판결한 경우가 많았고, 기아차 사측도 신의칙에 의해 통상임금의 범위 등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낸 1조 원대 ‘통상임금’ 소송 1심 결론이 오늘 나오는 가운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현대차 양재 사옥 전경/사진=미디어펜 DB


31일 기아차는 이번 사건에서 수십 년동안 임금협상 등을 통해 이어져 온 노사 간 신의를 고려해 신의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년 이뤄져 온 임금협상에서 기아차 노사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임금상승률을 그만큼 높여서 합의해왔다. 이 때문에 이제 와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기아차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의칙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 적용의 3가지 조건인 △정기상여금에 관한 사건일 것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가 있을 것 △근로자의 소급 청구가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낳을 것 등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신의칙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건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갑을오토텍 사건이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의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이에 따라 임금과 퇴직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 합의는 무효라고 판단하면서도 이로 인한 추가적 임금 청구는 신의칙에 따라 허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당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라면서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고,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발생시킬 경우 신의칙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아울러 "이미 노사합의에 따라 지급된 것을 뒤집을 경우 기업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이 인정되면 추가 임금 청구는 신의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다.

2015년 현대차 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 역시 고정성을 갖췄느냐가 쟁점이 됐다. 당시 재판부는 현대차 노조 가운데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에게만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조선 경기 악화로 현대중공업의 경영사정이 나빠진 점을 고려해 2009년 12월부터 2014년 5월까지의 임금 차액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같은 판례에도 산업계에 혼란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 후에도 많은 기업의 근로자들이 소송을 냈고 하급심에서는 판결이 엇갈리는 등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아차 측 대리인은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지 의문이며, 신의칙에 따라 차단돼야 한다"라면서 "자동차 산업 자체가 악화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회사 경영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되기 때문에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노동자 측 대리인은 "근로기준법상 못 받은 돈을 달라는 것이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라며 "회사 측은 우발 채무가 3조원 가까이 된다고 주장하나 과장된 것으로, 회사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선고 직전까지 회사와 노동자 측에 조정이나 화해의 여지를 확인했지만, 양측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기업들 중에서는 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 현대미포조선 등은 1심에서 신의칙이 부정됐다가 2심에서야 신의칙이 인정됐다. 그러나 현대위아나 금호타이어, 한라비스테온(현 한온시스템) 등은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에 대한 추가 임금 지급이 회사의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발생시키는지에 대해 법원 판단이 이 소송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소송은 기아차 뿐만 아니라 현대차와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에 산업계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소송의 청구금액은 원금 6588억원, 이자 4338억원 등 총 1조926억원에 달한다. 이번 사건에서 기아차 통상임금 기준이 바뀌면 앞으로 소송 청구액 이상의 부담을 사측이 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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